A씨는 새벽에 자신의 승용차를 운행하던 중 B씨를 쳐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히는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A씨는 다친 B씨를 돌보면서 근처 병원 응급실으로 후송하여 접수창구 의자에 앉히고 접수직원에게 “교통사고 피해자이니 치료를 잘 부탁한다. 아침에 바로 다시 오겠다”라고 말한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병원으로 가려던 A씨의 집에 경찰관이 찾아와 교통사고 후 도주하였다는 혐의로 A씨를 연행하려고 합니다. A씨는 피해자 B씨를 병원으로 후송하였고, 새벽에 치료 도중 병원에 있을 수 없어 아침에 다시 찾아가려던 것이었는데, 이런 경우에도 A씨는 도주차량운전죄의 죄책을 지게 될까요? 도주차량운전죄란 흔히 ‘뺑소니’라고 속칭되는 범죄로서,「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제5조의3 제1항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자동차 등의 운전자가 사고를 내어 피해자에게 사망이나 상해를 입혔음에도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도로교통법」제54조 제1항에 따른 조치를 하지 아니하고 도주한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에서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0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도주한 때”라는 문구의 의미에 대하여 우리 대법원은 사고운전자가 사고로 인하여 피해자가 사상을 당한 사실을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 도로교통법 제50조 제1항에 규정된 의무를 이행하기 이전에 사고현장을 이탈하여 사고를 낸 자가 누구인지 확정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 1997. 11. 28. 선고 97도2475 판결).

위 사안의 경우 A씨는 피해자 B씨를 돌보고 병원으로 후송한 후 집으로 돌아왔으므로, 얼핏 보면 A씨는 모든 구호조치를 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우리 대법원은 “A씨가 피해자 B씨를 병원 응급실에 데려다 준 다음, 피해자나 병원 측에 아무런 인적사항을 알리지 않고 병원을 떠났고, 경찰이 피해자가 적어 놓은 차량번호를 조회하여 피고인의 신원을 확인하여 연락을 취하자 2시간쯤 후에 파출소에 출석하였다면, 비록 A씨가 B씨를 병원에 데리고 가기는 하였으나 B씨를 비롯한 그 밖의 누구에게도 자기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도주함으로써 사고를 낸 자가 누구인지 확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케 하였으므로 이는「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제5조의3 제1항의 ‘도주’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즉, A씨가 교통사고 피해자인 B씨를 돌보고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인적사항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아 교통사고를 낸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태를 만들었으므로 이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의 도주차량운전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통사고로 인하여 사망이나 상해를 입은 피해자가 발생하였다면 단순히 피해자를 병원에 데려다 주는 것만이 아니라, 교통사고를 유발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점까지 확정될 수 있도록 경찰에 신고하거나 자신의 신원을 밝히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반대의 대법원 판례를 찾아보면, 교통사고를 발생시킨 후 동승한 아내에게 사고처리를 부탁하고 자신은 사고현장을 이탈한 경우에는 사고 야기자를 확정할 수 없는 상태를 초래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아 도주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었던 바 있습니다. (대법원 1997. 1. 21. 선고 96도2843 판결). 한편 교통사고를 일으킨 후 자신도 부상을 당하여, 출동한 경찰관이 자신과 피해자를 병원으로 함께 후송하였는데, 치료를 받던 도중 아무런 말없이 병원에서 나와버렸다고 하더라도, 이미 출동한 경찰관에 의하여 구호조치가 행해졌고, 자신의 인적사항도 경찰관이 모두 확보한 상태였다면 이 역시 도주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었던 바 있습니다. (대법원 1999. 4. 13. 선고 98도3315 판결). 따라서 만약 교통사로를 일으켰고 그로 인하여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은 피해자가 발생하였다면 피해자의 부상을 치료하고 병원으로 후송하는 등의 적극적인 구호조치를 해야함은 물론이고, 사고를 발생시킨 사람이 자신이라는 점이 확정될 수 있도록 피해자나 경찰관 또는 구급대원 등에게 자신의 구체적인 신원까지 알려야만 도주차량운전죄에 해당하지 않게 될 것임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법무법인(유한) 주원 김규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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