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민이라는 낱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자 판단에 따라 그 개념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그에 관한 해답은 우리들 자신보다 먼저 찾아낼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군 임금님을 국조(國祖)로 모시고 해마다 10월 3일이 되면 개천절 행사를 통하여 우리 겨레의 개국정신을 되새기곤 한다. 그 개국정신이 다름 아닌 홍익인간이요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이기 때문이다.

恒山 金 裕 赫 / 단국대학교 종신명예교수. 석좌교수

이는 모든 인간에게 그 삶을 이롭게 하고 아울러 모든 사물로 하여금 조화롭게 존재하며 생장하고 순리에 따라 소장 성쇠 할 수 있도록 다스린다는 뜻을 천명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우리들만을 지칭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며, 사람 이외에 모든 사물에 이르기까지 잘 다스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모든 사람은 세계인을 뜻하며 모든 사물은 세상 모두의 생활공간과 그 곳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모든 생류(生類)를 의미한다. 우리는 국가교육법을 제정할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정신을 이어왔고 또한 이어가기 위하여 실정법의 명문으로 천명하고 있다.

이 세상 어느 민족도 그와 같은 개국정신을 밝히고 있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세계시민의 본질과 위상(位相)을 이야기 할 수 있고 세계시민정신을 정의(定義)할 수 있는 역사적 DNA를 타고 낳은 민족이란 자부심을 지니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차별성을 넘어서서 평화적인 공존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밝혀가야 할 책임도 함께 느껴야할 것이다.

인류의 자연생성적인 소리의 집성자료로 알려진 시경(詩經)에 이런 구절이 전해오고 있다. “천생증민하사 유물유칙이요 인유도라(天生蒸民 有物有則 人有道)”는 구절이다. 이는 하늘이 모든 사람을 낳으시고 사물을 창조하실 때 사물에는 저마다 생장 소멸하는 원리와 존재하는 법칙을 정해주었고, 인간에게는 지켜가야 할 도리를 깨우쳐가도록 했다는 뜻이다.

 

인간은 무한히 깨우쳐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교화(敎化)의 대상이 되는 것이며, 모든 사물은 인간에 의하여 그 존재원리가 보호되고 아울러 생장과 소멸의 법칙에 따를 수 있게 다스리어야 하기 때문에 이화(理化)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홍익인간과 이화세계의 정신을 이와 같은 시각에서 음미한다면, 자신과 거주공간이 다르고 피부와 언어와 생활풍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을 차별화할 수 없는 것이며, 식물의 자연생태와 동물의 생래적인 자연 질서를 소유 및 점령의 개념으로 무차별 남벌(濫伐) 또는 난획(亂獲)하는 것은 유물유칙(有物有則)에 어긋나며, 특히 인유도(人有道)정신에 어긋난다.

 

왜냐하면 그것은 천칙(天則)에 어긋나는 일이며 동시에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 명심해야 할 것은 인간차별은 홍익인간 정신에 베치되고, 남벌과 남획 등의 소행은 이화(理化)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자연을 보호하고 평화를 갈구하며 자연계의 생태와 조화롭게 어울리고 범 인류와의 공존질서를 추구하려는 것은 곧 개국정신의 구현노력이며 현창해가기 위한 집념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세계 올림픽대회에 여건이 허락하는 한, 거르지 않고 참여해왔다. 우리는 이미 올림픽 개최국이 되었던 바 있고 월드컵대회를 일본과 공동개최한 바도 있다.

분단국의 처지에서 유례없는 최다수국가의 참여로 제24회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는가하면, 정치적 숙적이라 하는 일본과도 월드컵 경기대회를 성공적인 양국 협력 하에 잘 해냈다. 이 모두가 세계시민화의 정신 선양인 것이며 아울러 홍익인간과 이화세계라는 역사문화적인 DNA보유 민족으로서의 자긍심 표현의 일단이었다고 자평해도 무리는 아닌 상 싶다.

그러나 우리는 반성(反省)과 자제(自制)의 기회를 방기(放棄)해버렸던 경우가 자주 있었다. 그것은 임진왜란 발발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지니고 있었으면서도 선각자의 충고를 가벼이 여기다가 자위기반(自衛基盤)구축의 기회를 잃고 말았다.

그 뿐 아니라 병자호란의 치욕과 망국의 국치(國恥)를 당해야 했던 것도 장기평화의식에 침잠(沈潛)되어 있다가 선현들의 한결 같은 경고를, 이른바 “승평일구(昇平日久)의 뜻을 마음에 새기지 못 했기 때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념의 공백기를 틈타 침투했던 공산주의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감언이설에 유혹되어 동족상잔의 불행마저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유증은 현재에도 잔존해 있어서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비용은 연간 무려 5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들의 순간적인 방심이 얼마나 큰 해악의 결과로 되돌아오고 있는가를 언제나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예방적 대응은 어떤 경우에도 보람의 뜻을 안겨주지만, 사후 반성은 어디까지나 지난날의 상처를 매만지며 아쉬움을 달래게 할 뿐이다.

 

사람은 개체의 존재차원에서, 그리고 집단조직의 성언(成員)이라는 존재차원에서 그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소홀히 할 수 없는 직분(職分)이 있고 동시에 직책(職責)이 있다. 즉 지켜가야 할 분수가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사람은 분수에 따라서 살고 분수에 어긋나지 않게 처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춘추시대의 첫번째 패주(覇主)였던 제환공(齊桓公)은 관중(管仲)이 상주(上奏)한 장목(長目)과 비이(飛耳)와 수명(樹明)을 생활의 철칙으로 여겼고, 당태종은 위징(魏徵)이 진간(進諫)한 삼경훈(三鏡訓:銅鏡. 史鏡. 人鏡)을 죽을 때까지 지켜갔으며. 이퇴계선생은 신독(愼獨)을 염두에 새겨 지녔고, 이율곡선생은 퇴계선생에게 청하여 얻은 글귀인 지신귀재불기(持身貴在不欺)를 평생 마음에 새겼다. 좋은 고전을 두루 읽어가면서 발굴할 수 있는 것은 진주보다 값진 성언명구(聖言名句)의 귀훈(貴訓이다. 보물은 일시적 사용가치에 불과하지만 귀훈은 후손만대에 이어내려가도 감가상각(減價償却)해야 할 이유가 없는 보배 중의 보배다.

 

필자는 선현의 문집을 살피다가 우연히 청음 김상헌(淸陰 金尙憲)선생의 글 중에서 병자호란 당시 청국(淸國)에 끌러가 연금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의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잡아두기 위하여 옥석에 글귀를 인각하고 그것을 매월 1일과 15일에 상 위에 백포(白布)를 깔고 진열해 놓은 다음 글귀 하나하나를 깊이 음미하곤 했다고 한다. 청나라 관리들의 회유에 흔들리기 쉬운 마음을 잡아두기 위해서였다.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필자는 30대 초반부터 김상헌선생을 표준인간상 중의 한분으로 가슴 속에 모시면서 그를 본받기 시작했다. 국내외 어느 곳을 가나 마음에 드는 인석재(印石材)를 찾아 거기에 성언현어(聖言賢語)의 명구를 인각하기를 40년 넘게 지속했다. 고희(古稀) 때에는 낙관(落款)의 수가 500과(顆)에 이르렀다.

그것을 집성해서 편간하며 그 제목을 “마음을 돌에 새겨도 마음은 또 흔들린다” 라고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CD로 편집한 것을 컴퓨터로 조용히 감상하곤 한다. 그 때마다 마음의 배부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도리어 흐뭇하다.

그 밖에 나의 경험을 후손들에게 넘겨주기 위하여 자호(自號)인 항산(恒山)을 따서 이를 “항산자경시 12조(恒山自警詩 十二條)”라고 하였다.

우자천려 필유일득(愚者千慮 必有一得)이라는 말이 있거니와 어리석은 사람한테서도 한 가지 즘은 얻어들을 것이 있다는 뜻이지만 만의 하나 참고가 된다면 더 없는 사행(私幸)으로 여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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