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마음자리를 찾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

1300년 전, 백제 무왕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닌 개암사는 다른 사찰들이 산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삼한 시대 변한의 궁궐터에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같은 곳에 자리 잡으며 사찰의 역사를 이어온 개암사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이 있으며 현재 문화재청 주관으로 뒤쪽 주류산성 발굴 작업을 진행 중이다. 특히 개암사는 90년대 후반부터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새만금이 조성된다는 계획이 수립된 후 유명해 진 사찰로, 현재 템플스테이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곳의 템플스테이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편안하게 마음을 두고 쉬어갈 수 있는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지향한다. 또 매년 군 지원 하에 ‘우금문화제’라는 벚꽃축제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때 개암사를 찾으면 아름다운 절경과 마음의 안식을 얻어갈 수 있어 작년에도 약 5만 여 명의 사람들이 이 곳을 찾았다. 이처럼 오랜 역사와 높은 인지도를 가진 ‘공찰’인 개암사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된 무등스님은 1300년의 전통을 가진 개암사의 정신을 이어 받아 최근 4년간의 공식임기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연임이 되면 4년 더 주지스님으로 활동할 수 있으나, 무등스님은 이러한 자리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이를 ‘사찰을 잘 관리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개암사에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전국의 다양한 사찰을 다니며 유유자적 해 온 무등스님은 모든 일과 행동은 언젠가 반드시 제자리를 찾아가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윤회사상을 강조하며, 젊은이들이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며 인연에 따라서 모든 것은 항상 바른 자리로 돌아가기 마련이라고 일갈했다.

젊은 시절부터 시작된 사찰생활, 윤회(輪廻)로 귀결하다

절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주지스님이 되기 위해서는 3급승가고시를 치러야 한다. 3급승가고시는 절에 입문한 지 15년 이상 지난 스님들만이 볼 수 있는 시험으로, 무등스님 역시 20여 년간의 사찰생활을 하며 이번 승가고시를 통해 개암사의 무등스님이 될 수 있었다.

무등스님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20년간 전국팔도를 돌았는데, 재미있게도 제 출가 본사는 이곳입니다” 라고 운을 띄며 “이곳에 약 12년 정도 있었는데, 마치 물고기가 산란기가 되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듯, 제가 다시 본가로 돌아온 것도 윤회이자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30대 초반에 출가한 무등스님은 스님이 된 것도 특별히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저 인연이라고 말하는데, 또 이는 집안 내력도 아니며, 가랑비에 옷 젖듯 부처님 말씀에 이끌려 스님이 되었을 뿐이라고 이야기 하며 옅은 웃음을 보였다.

또 스님은 젊은 청춘에게 “남녀간의 인연도 흘러가듯 변화하는 것이기에, 젊은 시절의 연애는 크게 상처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고 조언하며 “저 역시 공허한 마음자리를 찾고 싶었으나, 아직도 마음자리를 찾지 못했기에 제 마음자리에 앉는 것이 지금의 목표입니다. 또 해탈을 이번 생에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못 하면 다음 생에 이를 이어가면 될 뿐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 부처가 있고, 우리 모두가 마음자리를 찾으면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개암사 무등스님

정치인들의 위기는 자업자득이자 인과응보

최근 혼란스러운 시국이 지속되는 가운데 무등스님은 정치인들에 대해 전혀 화를 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스님은 “정치인들도 구구절절 이유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지만, 이 역시 시대에 반드시 거쳐 가는 잠깐의 소용돌이일 뿐이고, 이러한 소용돌이와 파도는 잔잔해지기 마련입니다” 고 현재 시국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금은 체제 정비의 과도기일 뿐이지, 누가 잘하고 누가 옳지 못함을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성과 민주주의도 이러한 과도기를 거치면 한 단계 더 성숙해 질 것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지탄만 한다면 발전이 없게 됩니다.

우리는 그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더욱 성숙한 의식과 생각을 가지면 되는 것이죠” 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러한 상황을 통해 더욱 좋은 지도자를 선택할 안목을 국민들이 기를 수 있을 것입니다” 고 이야기 하며 “우스갯소리로 청와대 터의 운이 다했다고 하는데, 우리 조상들이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이유 없이 궁궐을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이는 우리가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믿음’의 차이일 뿐이고, 설령 기운이 다 했더라도 내 머리 끝부터 발 끝가지 기도를 해서 간절함을 표현하는 방법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의 사태 역시 자신이 맺은 인연으로 생긴 문제이니 자신이 풀어 나가는 것이 도리인 것이죠” 라고 침착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개암사 앞에 있는 바위는 소설 정감록이라는 책에 등장한 바위인데, 정감록에서는 ‘개암사 울금바위 뒤에 있는 바위가 열리는 날에는 새로운 미륵세상이 열린다’고 적혀있다.

이에 무등스님은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은 대부분 어떠한 절경보다 저 바위를 바라보는 것에 뭉클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하곤 하는데, 바위가 열린다는 것은 곧 마음의 문이 열린다는 것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문을 꿰뚫는 득도의 경지를 의미합니다” 라고 말하며 “지금 시국이 미래를 바라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수되어온

개암사의 비책, 죽염(竹鹽)

개암사는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경치와 더불어 죽염 또한 유명하다. 요즘에야 죽염이 흔하지만, 50년 전만 해도 죽염은 “불가”에서 비책으로 전해 내려올 만큼 귀한 ‘약재’였다.

특히 개암사의 죽염은 먼 옛날 큰스님들이 절에 있을 때, 병원에 갈 여건이 되지 않았기에 대나무에 소금을 아홉 번 구워 사용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죽염이 의외로 다양한 질병들에 효과를 보인 뒤로 민간에게 차츰 알려지기 시작했다.

스님은 “이렇듯 효과 좋았던 죽염을 우리 개암사 사찰이 제일먼저 만들었는데, 절에서 예전부터 써오던 죽염이 결국 효능이 좋은 것이 알려져 민간에게도 전수되었고, 이후 개암사 스님과 인연이 있던 몇 몇 사람들이 비책을 전수 받아서 이를 대량생산하게 되었습니다” 라며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죽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금은 예전부터 가장 중요했던 조미료 중 하나로, 지구가 생성될 당시부터 모든 생물과 함께 해 온 인간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며, 죽염은 구울 때 유황이나 미네랄 등 좋은 성분이 증가하는데, 나트륨은 줄어들어 실제로 어느 정도 병에 효과가 있습니다” 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중도를 따르고, 사찰을 아름답게 가꿀 것

최근 조계종의 파벌싸움 역시 욕심이 너무 과하기에 일어났던 일이라고 말하는 무등스님은 삶의 모든 충돌은 부처님 말씀인 중도를 따르지 않아서 생긴다고 설명한다.

인간사를 살다 보면 당연히 사람 간에 충돌이 있을 수 있는데, 여기서 자신의 의견만 내세우면 결국 태평성대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큰 대기업의 노사관계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파업을 하는 것 역시 합의점, 즉 중도를 찾지 못해서이다. 무등스님은 “가운데 점인 중간을 맞추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찾아 가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고, 앞으로도 저는 제 나름대로의 중도의 길을 걸으며 마음자리를 찾아 나설 생각입니다” 라고 말하며 “저는 그저 주어진 임기동안 사찰을 더욱 바람직하게 만들고, 1,300여 년의 역사를 이어갈 것입니다” 라고 말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임정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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