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 韓勝憲 감사원장

한 승헌 감사원장은 인권변호 30년의 재야 법조인 출신, 김대중 정부의 초대 감사원장으로 취임한 지 1년을 맞이했다. 지난 70년 김 대통령의 선거법위반변론을 하면서 인연을 맺어,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함께 구속되기도 한 ‘동지’이며 95년에는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규명단체의 공동위원장을 맡는 등 꾸준히 김 대통령을 도와왔다. 김 대통령은 그에게 총선출마나 전국구 공천을 여러 차례 제의했지만 고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언론통폐합조치가 해제된 후 국회 청문회 참고인으로 나선 그는 (한승헌 변호사)“항거불능상태에서 단행된 재산양도는 강도죄가 성립된다”며 당시의 신문. 방송 통폐합의 부당성을 주장한바있다.

전북 진안 두메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 정치학과, 57년 고시8회사법과에 합격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총재 이세중 전 대한변협회장 등과 고시동기다. 5년 간의 검사생활을 마치고 변호사 개업을 한 그는 양심수 변호활동, 글을 통한 독재저항 등 법정 안팎에서 많은 인권활동을 해 왔다. 노무현 정부 들어 사법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아있다.

‘인간귀향’ ‘노숙’ ‘위장시대의 증언’등 10여권의 시집. 수상 집을 낸 韓 감사원장, 그를 1999년 초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원장 실에서 만났다. 깡마른 모습에 빈틈이 없어 보이는 ‘투사’ 같은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사석에서는 풍부한 해학과 유머로 상대를 사로잡는다’ 는 세평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깐깐해 보였다.

-헌정사상 차음으로 여야 수평적 정권교체를 한지 오늘로 1년이 되었습니다. 개혁정부의 초대 감사원장으로 어려움도 많았을 것으로 압니다. 취임 후 1년 간의 소감과 새해 포부를 말씀해 주십시오.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한 날이 바로 1년 전 오늘이었습니다. 그동안 새 정부가 정책을 펴 오는 가운데 바람직한 변화도 많이 있었지만 아직은 어려운 현안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1999년 한 해는 모두가 합심해서 어려운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임 초 ‘외풍에 굴함이 없는 감사를 하겠다’고 밝힌바 있는데 현재까지의 실적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그리고 새 정부의 100대 과제를 감사를 통해 점검하는데 중점을 두겠다고 다짐하셨는데...
“감사원의 임부는 법에 정해져 있고 법이 개정된 것이 아니니까 예나 지금이나 기본 틀에 있어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감사환경은 달라집니다.
개혁을 추구하고있는 현 국민의 정부는 그 동안 감사를 통해 병폐를 바로잡고, 과거사 비리도 적발해 왔습니다. 이미 알려진 외환특감이라든가 PCS, 공기업특감에도 힘을 기울이는 등 세상에 알려진 여러 감사를 통해 나름대로 국정을 바로 잡는데 도움을 주는 감사를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감사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적당히 높은 것은 좋으나 그 기대치가 너무 높은데 대해서는 부담감이 매우 큽니다. 감사는 법 테두리 안에서 하기 때문에 감사원이 모든 걸 다 해주는 곳이라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부정부패의 척결을 감사만으로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원이 막중한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열심히 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치적 중립, 직무상 독립이 되어야합니다.“

-1년 동안 가장 어려웠던 일, 흐뭇했던 점을 한가지씩 말씀해 주시지요.
“가령 외환특감이라든가 그밖에 사회의 이목을 크게 끄는 사안들은 감사자체도 어려웠지만 감사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고 언론과 국민 앞에 그것을 발표했을 때 일부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순수하게 보지를 않고 곡해해서 마치 저의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했을 때 대단히 섭섭했습니다. 저희 감사원은 분명히 말해 정치적으로나 또 고위층 지시에 끌려가거나 한 것은 단 1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치권 일각에서 색안경 쓰고 보는 사람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 다음으로 보람 있었던 일도 많이 있었지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감사를 철저하게 해서 국정을 바로잡는데 반영시켰다는 점입니다. 종전에는 회계감사나 공직기강확립, 공직자비위적발에 치중했는데 지금은 예전보다 감사 폭을 훨씬 넓혀 정책에 도움이 되고 경제회생에 도움이 되는 감사를 훌륭하게 수행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변호사직을 박탈당하고 옥고를 치르기도 한 강직한 재야법조인 출신인 韓 원장께서 여당의 개혁 뒷받침을 해나가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우려도 있었는데.(이때 韓 원장은 차를 권하며 잠시 있다가 말을 이었다.)
“지난날 변호사로서 활동하는 가운데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는 분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변호를 한 것입니다.
무슨 대단한 용기가 있다기보다는 누군가 억울함을 당할 때 그런 자리에 나서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제가 변호를 맡았던 것이지요.
한 법조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 그 시대가 요구하는 행동이고 사명이었지요. 이러한 사명을 저버릴 수가 없어서 민주화운동 대열에 따라 다닌 것입니다. 그런데도 언론이나 국민들의 평가에서 대단한 사람처럼 과찬을 해 주신 것은 참으로 당혹스럽습니다. 또한 정권교체가 되었지만 만족하거나 자만해서도 안됩니다. 민주사회를 건강하게 건설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된다고 봅니다. 모든 국민이 고락을 같이하고, 자만해서는 안되지요. 국정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사회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정권교체는 새로운 과제를 시작하는 것이므로 목적의 달성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임초기의 일반적 우려와는 달리 어색한 점 없이 감사업무를 소신껏 추진하신다는 평도 있던데...
“재야 변호사로 있다가 정부에 들어 왔다고 해서 어색한 점이나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재야 때부터 추구해온 것도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정부에 와서도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저의 소임입니다. 그러니까 자리만 재야에서 정부로 바뀐 것뿐입니다.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직함만 바꾼 것뿐이지 현실을 비판하는 비판자로서의 자리는 똑같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사원도 정부 부서의 하나니까 전혀 어려움이 없겠느냐는 것인데,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지만 아직 한번도 대통령으로부터 지시나 명령을 받은 일은 없습니다. 임명장을 누구한테 받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부여된 직분을 어떻게 바르게 수행하느냐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여기 와서 일하는 동안 정부 권력 쪽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대통령으로부터도 한번도 전화나 외압을 받은 일이 없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감사관들에 대한 특별한 복무지침이나 특수교육 같은 것이 실시되고 있습니까.
“감사원 직원은 우선 기본적인 학식과 소양이 중요합니다. 나아가 고도의 학식과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감사원에는 박사, 석사, 변호사, 공인회계사 등이 많이 있습니다. 고도의 학식과 전문성 보장을 위해 해외유학 또는 연수를 하고 , 그래도 모자라면 외부인사를 계약직이나 자문위원으로 모셔 전문성 보강을 합니다. 또한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받는 사람보다 도덕성이 우월해야 됩니다. 청렴성을 포함해서...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도덕성을 강조합니다. 또 교육도하고 평가도합니다.”

-김 대중 대통령과는 언제부터 인연이 되셨는지요.
“60년대 중반에 어떤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70년 들어서면서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운동과정에서 친숙하게 되었는데, 73년 8월 일본서 납치 당해 온 뒤에 대통령선거법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되었을 때 변호인의 한사람으로서 변호했습니다. 대부분 공적인 일로 인연을 쌓게 된 것입니다.”

-무척 바쁘실 텐데 취미생활이나 여가선용은 어떻게 하십니까.
“특별히 말씀드릴게 없습니다. 예전에는 ‘무슨 운동을 했느냐’ 물으면 ‘변호사니까 석방운동 좀 했지요.’라고 대답하기도 했지요 요즘은 운동이나 여가선용을 거의 못하고 있습니다. 공직사회에 들어오니까 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행복 추구권을 접어두고 있습니다. 공직 생활하는 동안은 안되겠다는 생각입니다. 공직에서 퇴임한 뒤에나 미루어 두었던 취미생활을 할 생각입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은.
“채식을 많이 합니다. 북어국도 좋아합니다. 북어는 얻어터질수록 맛이 나거든요. 그리고 새우를 좋아합니다. 새우는 평생 허리 한번 못 펴고 살아갑니다. 어찌 보면 내가 살아온 과정과 비슷하지요. 한번은 식당에서 새우요리를 시켰는데 뜻밖에도 한일자로 허리를 편 새우가 나왔어요. 이제 허리 편 새우도 있구나 하며 웃은 일이 있지요.(웃음).”

-끝으로 공직자나 국민에게 꼭 하고싶은 말씀은.
“공직자들은 나름대로 자기 직무에 열심히 일하며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과거의 타성에 젖어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불성실한 공직자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감사원 책임자로서보다도 한 지식인으로서 공직자들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말은 공직자로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도록 정부가 지향하는 어렵고 힘든 개혁을 참을성 있게 추진해 달라는 것입니다.
공직사회에 대하여 국민들이 기탄 없이 비판해 주십시오. 마음에서 울어난 비판이 아닌 애정 어린 비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뉴스 1999년 1월호)

저자 주요 약력
1957년 부산일보 민주신보 기자 / 1963년 영남일보 사회부, 정치부 차장, 부장
1973년 서울신문 경북취재반장(87년정년) / 1988년 경기일보 사회부장
1989년 대구일보(재창간) 편집부국장 겸 사회, 정치부장 / 1993년 경상매일신문 상무
1993년 대한뉴스 논설주간 / 2003년 뉴스매거진 논설주간 (현)
저작권자 © 뉴스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