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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信雉 雉疑人인신치 치의인-사람은 꿩을 믿지만 꿩은 사람을 안 믿어,雉隨人 人友雉치수인 인우치-꿩이 사람을 따르고 사람이 꿩의 벗이 돼.
  • 恒山 金 裕 赫 단국대학교 종신명예교수. 석좌교수
  • 승인 2020.08.05 08:57
  • 호수 292
  • 댓글 0
恒山 金 裕 赫 단국대학교 종신명예교수. 석좌교수

꿩은 예부터 인간의 가장 손쉬운 사냥감의 대상물이 되어왔다. 이러한 꿩은 언제부터인가 산닭(山鷄)이라고 불러왔다. 거기에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꿩은 마을 가까운 동산에 살면서 멀리 깊은 산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산을 넘어 강과 바다를 건너서 다른 나라로 옮겨가지도 못한다. 봄이 되면 농부가 씨 뿌린 밭고랑의 콩을 파먹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농가에서 기르는 닭처럼 10여개의 알을 일정기간 품었다가 병아리를 까는 것이 닭과 유사하다.

설문법(說文法)에서 보면 “꿩” 이라는 글자를 “화살시 변에 새초를 써서 꿩치(雉)라고 한 것”은 화살처럼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갈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꿩은 닭과는 판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닭은 사람과 친근감을 지니고 집 뜰과 울안에서 살아간다.

일본어에서 닭을 “니와도리(庭鳥)”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인이 주는 모이를 먹고 주인이 마련해준 닭장에서 야숙(夜宿)을 하며 보호를 받는다. 그 은혜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암탉은 거의 날마다 달걀을 낳아준다.

그래서 닭을 가계(家鷄)라고 한다. 닭은 성계(成鷄)가 돼도 집밖으로 도망가는 예가 전혀 없다. 끝내는 사람의 영양식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꿩은 다르다. 꿩은 울안에서의 사육은 가능하지만 반 개방식 사육마저 불가능하다. 1년간 울에 가두어놓고 사육해도 문만 열면 달아나 버린다.

한 마리도 울안으로 돌아오는 놈이 없다. 이것이 꿩이 지니는 DNA인 듯싶다.

사육해준 주인에 대한 고마움도 생각지 않고, 먹는 것 때문에 자존심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 꿩이 지니는 지조(志操)이다.

꿩 잡는 매도 주인이 주는 먹을 것을 받아먹으며 꿩을 잡아 주인에게 받친다. 그러나 꿩은 매와 같은 보답성이 없다. 그것이 꿩이 지니는 특성이다.

선인들은 그 지조를 높이 평가하여 그것이 선비의 지조이어야 한다고 했다.

공자의 연보를 살펴보면 동 시대의 선배인 노자(老子)에게 두 번 예방하여 문답을 나누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공자는 방문 예물로서 꿩을 가지고 갔다.

그때부터 스승에게 예방 선물로 꿩을 전했다는 전통이 이어져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선비들은 꿩을 준비하기 어려워서 닭을 예물로 대신했다고 한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적어도 2.500여년 이어져 온 속언(俗諺)이다. 사람은 꿩의 지조를 믿어오고 있지만 꿩은 사람과 친근해지지 아니하고 의심을 지닌 채 피해 날아갈 뿐이다. 그래서 인신치(人信雉), 치의인(雉疑人)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4월15일 총선 다음날, 어느 유투브 방송에서 꿩과 친구가 된 청소년이 꿩과 더불어 정답게 시가지를 산보하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애견이 주인을 따르듯이, 꿩이 목줄도 없이 주인을 졸졸 따르는 진귀한 광경을 본 많은 행인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별난 일이라 한마디 식 하는 것을 들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그 경위를 말해주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감탄했다.

어느 날 길옆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주저 앉아있는 장기(雄雉) 한 마리를 발견했다. 옆으로 다가가도 움직이지 않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 꿩을 품에 안고 온 몸을 살펴보니 한쪽 다리에 부상이 있었다. 집에 데려가 담요에 폭 싸서 재우고 먹을 것을 주고 물을 주고 아픈 다리에 붕대를 감아주고 약을 발라주었다.

꿩의 본성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불편하거나 아프다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아 더욱 마음 안타깝기만 했다고 한다.

다음 날 그 청소년이 방을 나가려했더니 꿩이 절룩거리며 그의 뒤를 따라나서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 길로 꿩을 품에 안고 병원으로 가서 수의사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진단과 치료를 받았다. 수의사도 말하기를,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면서 놀랬다는 것이다. 이후 꿩의 상태가 점점 좋아진 후, 아예 사람을 따르기 때문에 그 청소년은 어쩔 수 없이 꿩의 생활 동반자가 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해칠 마음이 없으면 짐승도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人無害心, 獸不害人)고 했다. 꿩은 아마도 그 청소년이 보여준 측은지심(惻隱之心)에 감동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흥부가 보여준 따듯한 마음을 애절히 느꼈던 제비처럼 말이다.

여하튼 우리는 기록상으로 보아 꿩과 친할 수 없는 춘추시대부터 2.500여년 이래, 처음으로 꿩이 의인벽(疑人癖)을 버리고 사람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게 된 셈이다.

예부터 꿩과 기러기와 닭은 사람으로 하여금 배워야 할 상징성이 있다고 했다. 꿩은 선비다운 기질을 지니고, 닭은 천성적으로 타고 난 오덕(五德: 文武信勇仁)을 지녔고, 기러기는 스스로 생활철칙으로 지키는 사덕(四德 : 和行節義)을 지닌다. 설명을 좀 가한다면,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는 인간도 苦毒(충고)과 甘毒(뇌물)중, 충고는 기피하면서도 뇌물을 싫어하지는 않는다<呻吟語 참고>. 그러나 꿩은 먹을 것과 같은 뇌물을 어떤 경우에도 지조와 바꾸지 않는다. 약설하면, 닭들은 흩어져 놀다가도 주인이 모이를 주면 예외 없이 “꼬 꼬 곡” 하면서 모든 닭들을 불러드려 함께 모이를 먹는다, 이를 닭의 견식상호(見食相呼)라고 한다<漢詩外傳 참조>. 그리고 기러기는 계절 따라 먼 여행을 하면서 큰 놈은 선두에, 작은 놈은 뒤를 따르면서 신호의 대화를 나누며 팔자행열(八字行列)로 질서 있게 비행한다, 이를 안행(雁行)이라 한다. 만약 짝을 잃게 되는 기러기가 있다면 그는 평생 홀로 지낸다. 수절(守節)을 한다. 사람들은 “홀로 다니는 이를 짝 잃은 기러기처럼 왜 혼자냐고 한다” 기러기에서 여유한 말이다.

예 부터 우리 속담에 막말도 많지만, 꿩이나, 닭과, 기러기기를 빗대서 “궝 같은 놈, 닭 같은 놈, 기러기 같은 놈이라는 비속어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면서도 때로는 맹자에서 이야기하는 량능(良能)과 량지(良知)를 송두리째 저버리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탐욕과 명예욕과 집단적 세욕(勢慾)때문에 자신의 처지가 불상(不祥)해져 가는 것조차 되돌아 보려하지 않는 이가 많은듯하다. 겸해서 자학과 부도덕과 악행도 불사한다.

조광조선생의 말대로 하늘과 인간의 사이는 먼듯하면서도 실제는 가깝다(天人之間 似遠而實邇)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 줌의 권세를 잡았다고 오만불손의 기개를 떨쳐버리지 못했다면 꿩과 닭과 기러기의 덕성(德性)을 한번 쯤 되뇌어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恒山 金 裕 赫 단국대학교 종신명예교수. 석좌교수  news05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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