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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안전하게, 더욱 좋게, 더욱 저렴하고 빠르게정직·안전·신뢰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강소기업
  • 이종현 기자
  • 승인 2020.07.08 14:20
  • 호수 291
  • 댓글 0
바이켐(주) 이범환 대표

하나의 기업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으면 그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먼저 살펴보라는 말이 있다. 성공한 기업은 최고경영자의 역량과 혁신적인 자세, 견고한 기업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열정 등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본지에서는 창조적인 기술과 혁신적인 기업정신 및 따뜻한 리더십으로 직원들과 소통하는 우수중소기업 바이켐(주) 이범환 대표를 만나보았다.

이범환 대표는 초창기 자본금 없이 어렵사리 건축용·공업용 도료사업을 시작해 남들보다 몇 배 더 열정과 힘을 쏟아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성실함과 신뢰를 사업밑천 삼아, 마치 밀림 숲을 헤쳐 나가 듯 하나하나 어려움을 극복해 가면서, 사업에 대한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성공신화를 이루었다. 이범환 대표는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도료업계에 뛰어들어 반세기가 넘는 동안 혼자 연구하고 배우면서 기술노하우를 쌓았고, 어려웠던 시절을 버텨냄으로써 내성이 더욱 강해졌다”고 강조하며, “저의 모든 원동력은 집중력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면 정직한 결과가 나온다고 믿었다”고 소회했다.

이어 “저는 ‘신뢰가 곧 힘’이라는 경영 이념으로 한번 맺은 거래처와는 사소한 약속도 생명처럼 지킨다는 신념으로 거래를 해왔다”고 자부하며, 또 “안으로는 가격은 낮추고 안전한 품질, 좋은 품질을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거래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고 그 과정에 대해서 전했다.

앞으로도 ‘최고의 기술력과 노하우로 미래의 강소기업에 새롭게 도전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2015년 예산군으로 확장·이전한 바이켐 이범환 대표는 이제 주력 업계에서 더 큰 파도에 올라탈 준비를 마치고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오로지 한 분야에 집중적인 기술개발과 투자로 국내 최고의 제품만을 생산하며, 안정된 품질관리로 자리매김을 해온 이범환 대표는, 1977년 백양페인트 화학공업사라는 상호로 창립해 2000년 (주)바이켐으로 기업명칭을 변경 했다. 이후 ISO9001, 14001을 비롯해 중국 화공품질 MA인증, 중국녹색건재제품 추천증서, 친환경성 산업용세정제 개발 BCS-Series를 특허등록, 기능성 수성도료 조성물 등, 해외 인증과 국내특허를 연이어 획득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환경보존 유공표창을 받는 영예를 안았으며, 이어서 경기도 안산시 중소기업대상(산업재해예방부문), 성실납세자에도 선정되었다. 또한 2017년에는 BCS-Series 환경마크 획득(유해물질 감소제품), 비염소계 세정제 조성물 특허등록, PSM이행실태평가 ‘S’ 등급을 연이어 받았다.

이후 2019년에는 가족 친화기업 인증, 일하기 좋은 중소기업 인증, 근무혁신우수기업 인증, 기술역량 우수기업 인증, 뿌리기업 인증, 고용노동부 청년 강소기업으로 선정된 우수 모범중소기업이다.

친환경제품, 합리적 가격으로 고객만족 이끌어

케미컬(Chemical)전문 제조기업 바이켐(주)은 친환경산업용 세정제와 건축용·철제용 도료, 희석제, 산업용 세정제, 유기용제 등을 생산하는 기업으로서, 체계화된 품질관리와 지속적인 기술혁신으로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개발하고 있는 우수중소기업이다.

바이켐은 TCE, MC, DCP 등의 유독물 원료로 제조된 세척제를 대체하는 안전 및 환경친화적인 제품 BCS를 개발해 산업용 세척제를 생산·공급하고 있다.

특허 등록된 BCS는 오존층을 파괴하지 않는 물질로서 작업자의 인체에 해가 없으며, 오염물에 대한 용해력과 열 안정성이 우수하고, 금속소재와의 반응성이 없어 전기, 전자부품, PCB, PCM 전자기판 등 정밀기기 부품의 세정에 효과적인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이와 함께 리사이클링 시스템을 통해 폐유기용제를 순도 99.9%로 정제하여 원료로 재활용함으로써 폐기물 발생량을 최소화 하여 환경 보호에도 일조하고 있다.

이범환 대표는 탁월한 리더, 준비된 기업인으로서 바이켐의 성장의 밑바탕에는 이 대표의 특유의 경영철학이 녹아있다.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백양페인트를 설립한 그는, 여러 번 고비를 넘기면서도 남달리 거래처와 신뢰를 구축하고, 연구·노력하는 자세로 회사를 성장으로 이끌었다.

특히 뛰어난 기술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흩어져 있던 선진기술과 노하우를 모아 지속적으로 투자함으로서 기업성장의 바탕을 마련했다. 또한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는 각오로 남들보다 몇 배 더 힘과 열정을 쏟았다. 이와 함께 공동의 선을 실천하는 윤리와 정직한 경영자세로 내실을 기하며,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참여하고 주도하면서 제품을 생산했고, 검품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과감하게 수습하는 등, 완벽한 제품 생산을 목표로 철저한 품질관리를 실현해왔다.

아울러 “직원들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기분 좋게 일할 수 있도록 좋은 근무여건을 마련해주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하는 이 대표는, 그동안 직원들의 능력개발과 함께 인재 발굴 및 육성에 견인차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이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단계씩 더 오르기 위해 수익이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기계와 설비를 갖추는 방식으로 기업을 업그레이드를 해왔다. 이를 통해 각종 현대화된 최고의 설비를 갖췄고, 이제는 어엿한 우수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대표는 외부적으로는 “한번 인연을 맺은 거래처는 지속적으로 거래를 하고 있다”고 자부하며, “거래처와의 관계에서도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왔고, 그 어느 기업보다 빠르고 정밀하게 일을 처리해 납기일을 정확하게 맞춰왔다.

“우리의 노하우와 기술력이 뛰어나 인정받고 있지만 보다 더욱 집중해 품질 안정화 및 업그레이드를 통한 질적인 성장에 더욱 치중할 계획”이라고 밝히는 이 대표가 그동안 매진해온 부분은 안전설비 투자, 직원들의 복지 향상, 경영의 효율화 등, 기업의 모범답안을 실천함으로서 업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새로운 형태의 수익 모델과 틈새시장을 지속적으로 공략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하며, 아울러 “수요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가치지향의 기업문화를 꾸준히 조성해 나아갈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성공의 원동력은 정직함과 집중력 및 신뢰

젊은 시절 8남매의 장남으로서 실질적인 가장역할을 했던 이범환 대표는 바이켐(주)을 창업하기 전,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동종 업계에서 10년 동안 일을 하며 기술력과 노하우를 쌓았다.

“당시 제가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1시 반까지 일을 했다”고 말하는 이 대표는 “집으로 귀가 후에도 집 지하에 연구실을 만들어 책을 읽고 실험·연구하면서 하루 4~5시간 수면으로 30년을 버텼다.”고 회고했다.

“처음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생산·영업·기술연구까지 광범위하게 일을 하면서 보니까 오히려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회사에서 배우는 게 더 많았다”고 전하는 이 대표는, 절박했기에 남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고, 공부하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기술력을 높였다. 심지어 그는 새 책을 살 돈이 없어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필요한 서적을 구입해 읽으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실 이 대표의 부친은 세종대왕의 다섯 번째 아들인 광평대군의 17대 손으로서, 옛날 양반어른들이 그렇듯이 왕손이라는 명목에 집착해, 가정은 잘 돌보지 않았고 양반 대접만 받다 보니 그의 성장기 내내 집안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 춥고 배고프게 살았으니 절대로 내 처자식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말자는 각오로 일을 했다”는 그는 “모르는 것은 선생님에게 물어봐도 정답을 알 수 없었고, 가르쳐줄 멘토가 없어서 직접 일본에 가서 자료들을 뒤져보고 바디랭귀지를 써가며 질문하고 실험하면서 공부했다”고 열정의 시절을 회고했다.

하지만 다시 닥친 고난은 가혹하기만 했다. 그가 일하고 있던 업체의 대표는 사업보다는 부동산 쪽에 관심이 많아, 회사의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긴 상태였다. 자연히 그는 생산부터 영업, 인사총무까지 모두 관리해야만 했고, 심지어 은행 및 세무까지 모두 관리를 도맡아 일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새벽 일찍 출근해 통행금지 직전인 밤12시 직전에 녹초가 되어 집에 귀가했다. 그렇게 일을 했는데도 회사 부채가 자산보다 많아서 결국 1975년 부도가 났고, 그는 퇴직금 한 푼 받지 못하였고 최후 1년은 무료로 봉사를 했던 셈이다. 그러나 그는 긍정적이었다.

“저는 회사에서 돈을 받는 것 보다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 더 큰 자산이라 생각했다”며, “그래서 나중에 내 사업을 할 때도 자신 있게 경영을 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회사 부도가 난 이후에도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연구를 해온 그는 마음을 추슬러 직접 창업을 결심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자본금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신뢰를 구축해왔던 거래처 사장님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느냐”고 물어서, “자본이 없으니 어음 3개월짜리로 끊어 선수금으로 해주시면, 그 자본으로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겠다”고 요청했다. 그런데 놀라운 반응이 나타났다. 무려 50명의 거래처 대표들이 각각 100만원씩 모아 그의 사업을 도왔다. 당시 꽤 큰 농가주택 한 채 값이 70만원이었던 시절로서 5천만 원의 자본금은 엄청나게 큰 액수였다. 그렇게 백양페인트는 그의 나이 30대 초반인 77년도에 원효로에서 설립됐다.

이 대표는 “아직 생존해 계시는 분들이 많지만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고 전하며, “저는 가진 자본도 없었고 권력이나 체력, 인물까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는데 믿고 도움을 주셨다. 제게 가진 단 한 가지가 있었다면 그것은 신뢰였다”고 회고하며, “지금까지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든 고객들에게 ‘정직함과 믿음을 갖고 살자’를 모토로 경영하고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선수금으로 원료를 구입했고 가격대비 남는 것이 부족해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서 믿고 거래해준 고객들에게 저렴하게 제공하면서 조금씩 성장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백양페인트의 품질이 최고로 좋다”는 것이 소문이 나면서 옆 가게, 그 옆 가게 등에서도 입소문을 듣고 계속 찾아왔다. 그는 찾아온 사람들에게도 역시 자본이 없기 때문에 선수금을 받아 원료를 구입해 제조하는 방식으로 꾸준히 거래처를 늘려 어느새 500여 개의 거래처가 발생했다.

거래처가 대거 생기면서 이 대표는 운반부터 영업, 수금, 원료구입까지 하루 400~500Km씩 달리며 거래처를 직접 관리했다. “초창기 30년 동안 열심히 달리다보니 오후 3~4시가 되면 기운이 쑥 빠져나가서 생각해보면 점심 굶기가 일쑤였다”고 말하는 이 대표는 그래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호빵 갖은 것을 차 안에 사두고 점심으로 때우면서 1인 10역을 해냈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이범환 대표는 품질은 높이고 가격은 저렴하게 공급하는 방식으로 사업기반을 단단히 구축하고, 언제든지 직접 현장에 출동할 수 있는 남다른 서비스 정신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거래처 및 수익기반을 형성했다. 또한 편도 2시간 반이 걸리는 출·퇴근길에서도 그는 허투루 보내지 않고, 테이프를 틀어놓고 대학교수 강의나 외국어를 습득했다. 그러나 운명은 가혹했다. IMF를 겪으며 매출이 반 토막이 나는 등 또 한 번의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

이 대표는 호구지책으로 시장을 넓히기 위해 매주 월요일이면 회사의 결제를 마치고 화요일이 되면 무작정 중국의 큰 시장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시’ (인과관계)문화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그는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나 베트남 등의 동남아 시장까지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특히 선수금이라는 빚을 안고 시작한 공장이라 정리할 상황도 아니기에, 그는 믿고 맡겨준 지인들을 위해서도 무조건 근면 성실하게 일했다.

그는 경영자로서 책상에 앉아서 지시하기보다 사업현장을 직접 방문해 성과를 내는 타입으로서 제조·생산은 물론 영업까지도 뛰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은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기술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차별성을 갖기 위해 연구를 멈추지 않았으며, 또한 밖으로는 지속적으로 거래처를 넓혀가며 신뢰를 구축했다. 그 땀방울의 결실로 친환경적인 세정효과와 함께 인체에 무해하며 내성과 독성이 없는 제품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고, 이제는 굴지의 대기업과 지속적인 거래를 하고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 안정된 기업의 반열에 오르며 튼실한 열매를 수확 중이다.

공동의 선을 실천하는 정직한 경영 및 안전에도 집중

근로자의 직무수행상의 위험이나 상해로부터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업장내 위험요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배제해 산업재해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함은 물론, 발생한 재해에 대해서도 적절한 조치와 대책을 강구해 가는 안전관리체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대부분 현장에서 잘못된 것이 발견되면 감추기에 급급해 더 큰 참사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또한 일을 아무리 잘해도 안전에 대한 관리 및 그에 대한 고객의 신뢰가 없다면 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그동안 사고 없이 사업을 순탄하게 사업을 이끌어 더욱 신뢰를 얻고 있는 이범환 대표는 “안전문화 구축은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제가 직원들과 함께 일하면서 어떤 점이 어려운지 직접 찾아보며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안전제일의 문화가 장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안전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어 “기존 안산공장의 공간적 한계와 강화된 법규를 준수하기 위한 설비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산으로 확장·이전했다”고 전하며, 산업안전보건법, 위험물관리법, 환경법, 화학물질관리법 등의 기준에 맞도록 환경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그 밖에도 친환경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답게 직원들의 복지를 위한 금연 장려금 지원, 사택 및 기숙사 제공, 공정안전보건교육, 안전보호구관리, 탄력근무제, 건강관리, 장학격려금, 낚시동호회, 볼링 및 각종 직장동아리 활동을 장려하고 있으며, 직장內 괴롭힘 방지교육, 직원 생일축하 등으로 직원들의 복지후생 쪽까지 각별하게 관리하고 있다. “모든 기업은 이윤을 창출을 목적으로 경영하고 있지만 사회 환원 역시도 우리 기업의 모토”라고 강조하는 이범환 대표는, 지역 내 복지시설에 1000만원 상당의 에어컨 25대를 기탁하기도 했으며, 삽교읍 효림리 마을발전을 위한 1사 1촌 자매결연을 체결하고, 틈틈이 아내 박경순 여사와 2남 1녀, 8명의 손자손녀들까지 함께 기업과 지역농촌마을이 함께하는 상생 분위기를 확산하고 있어 지역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향후 100년을 꿈꾼다

그동안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고 일에 매진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이범환 대표는 앞으로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바탕으로 업계를 리드하는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하며, “능력 닿는 데까지 열심히 일해 기업을 단단하게 만들고, 스스로 힘이 다할 때 차세대를 위해 물러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어, “제가 은퇴를 하고나서도 아들이 성실하게 이어가 100년, 200년을 내다보며 장수하는 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내비쳤다.

특히 차세대 주자로서 아버지의 꿈을 물려받고 있는 아들 이정훈 이사에게도 한 마디 아끼지 않았다. “성공은 피나는 노력과 시장을 보는 안목과 추진력, 그리고 신뢰가 함께 이루어지지 못하면 결코 이루어내기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사업이라도 결국에는 신뢰와 함께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우리세대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지만 지금은 자료가 넘치니 연구하고 고민해 답을 찾고, 스스로 자기 가치를 올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직원들에게는 “직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어서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가족처럼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고,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복지에도 투자해 더욱더 행복한 일터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좋은 일자리를 찾고 있는 젊은 인재들은 1등 기업의 비전을 지니고 있는 우리 기업에 오셔서 바이켐의 가족이 되어달라”고 당부하며, “저희와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이 더욱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서 “품질시스템 구축으로 안전한 제품과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100%의 고객가치 창출을 목표로 모든 고객의 신뢰받는 기업으로써 거듭 변화하고 발전해 가는 기업이 되겠다”고 의지를 전했다.

선진적인 시대정신을 오롯이 담은 이범환 대표의 유연성과 균형적 사고는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케미컬 업계에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그러한 창의적 경험을 바탕으로 조건에 맞는 철저한 사전조사와 유연한 교섭력이 그동안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요인이기도 하다. 평소, 직원을 가족처럼 여기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앞으로도 전 세계 고객을 감동시키는 기업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이종현 기자  news05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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