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상단여백
HOME 사회/교육
“참전 유공자 분들을 위해 복지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아직도 가슴 아픈 남아있는 시절, 6.25전쟁을 회상하다.’
  • 이학성 기자
  • 승인 2020.07.07 08:39
  • 호수 291
  • 댓글 0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금천지회 지인환 회장

“학생들 대상으로 6·25 바로 알리기 교육이 최우선”

“참전유공자 수당의 인상이 당면과제”

“'보훈 수라간' 주요사업으로 추진”

“유공자들의 복지와 건강을 바래..”

우리 민족의 비극 6.25사변의 참극이 아직도 유공자들의 가슴에 한 많은 멍울을 채 가시지 않게 하고 있다. 휴전 이후 반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큰 희생과 단절을 낳은 6·25의 기억은 억한이 무너질 만큼의 눈물 많은 역사로 남아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채 휴전이라는 이름으로 민족사에 남아 있다.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금천지회 지인환 회장(90세)은 순국 선혈들과 호국영령의 혼을 위로하며 남아 있는 유공자들의 복지와 건강을 바랬다.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금천지회는 금천구에 거주하는 회원들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훈단체로서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다.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금천지회의 현 상황과 지인환 지회장이 전하는 비전과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들어보았다.

Q. 지인환 회장님의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첫 회장으로의 취임은 2017년 1월 17일에 했습니다.

6대 회장으로 취임했으며 6대 회장이 끝나자 이어 2020년 1월 7대 회장으로 연임되었습니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사무국장이 요청했습니다. 회장을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건강한 분이 봉사를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취임을 할 때 소감을 묻던 분이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금천구지회에서 나이가 가장 많았습니다. 나이 많은 참전 유공자 분들을 위해 힘이 되는 데까지 복지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었습니다.

Q. 조직구성과 주요사업내용을 어떻게 됩니까.

A. 조직구성은 회장 한 명과 부회장 세 명, 사무국장과 감사 세 명, 운영위원이 동네마다 한 명씩 있습니다. 운영위원은 모두 12명입니다. 회원 수는 보훈처에 등록되기로 294명이지만 건강들이 좋지 못하고 코로나로 인해 총회를 못하고 있습니다. 월례회의를 매월 하는데 처음 회장을 하던 당시에는 70명 정도 나오시다가 지금은 많이 나와야 50명 정도 나오는 수준입니다.

저희 지회가 맡는 주요 사업은 본회의에서 지시가 내려오는 6·25 바로 알리기 교육입니다. 학생을 대상으로 하며 학교마다 찾아가서 교육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전교조 등과 관련되어 학교에 못 오게 하는 경우도 많고 문전박대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행히 박길본 사무국장이 발이 넓어 협조를 잘 받는 편입니다. 서울시의원들이 학교 예산을 편성해주기 때문에 중간에서 이를 잘 섭외해줘 우수 지회가 되어 상도 받았습니다. 최우수 지회도 한 적이 있고 이어서 우수지회가 되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학사 교육을 편성할 때 미리 6·25 교육 등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점이 항상 맞지 않습니다. 내년부터는 관내 문일고에서 가능해질 듯합니다. 중앙회에서는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줬으면 합니다. 6·25 관련 역사 교육은 중앙회에서 대령으로 제대해 안보교육을 받은 전문 강사가 있어 학교를 지정하고 날짜를 지정되면 전문 강사가 직접 지도합니다.

지난 번 교육에서는 교육이 끝나고 학생이 한 명 찾아와 경례를 하며 육군사관학교를 가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학교교육이 힘들지만 교육이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백산초교에서 6·25알리기 교육 후 기념촬영.

Q. 금천구지회에서 별도 시행하는 사업이 있다면

어떤 사업입니까.

A. '보훈 수라간'이라는 사업이 추진 중에 있습니다. 한 독지가가 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했는데 아직 자금 확충이 안 되어 사업이 지연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건물은 현재 금천구내에 가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보훈 수라간’이 완공이 되면 매일 80명 정도의 보훈단체 회원들이 무료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독지가가 자금을 마련하면 그 다음에는 농협 등에서 쌀을 지원받을 계획입니다.

회원 분들이 나이가 다 90세 이상입니다. 98세 된 회원분도 있어 언제 돌아가실지 모릅니다. ‘보훈수라간’ 사업도 이분들이 식사하며 항시 웃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회원 분들이 살아계실 동안에 빵 한 조각이라도 나눠줘서 위로를 하고 싶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 국장으로 해 준다는 말들이 있는데 저 본인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지 않고 살아생전에 하나라도 더 해드리는 것에 의미를 두는 편입니다.

Q. 6.25 당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까.

A. 당시 저는 경찰관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강원도 시골에 목욕탕이 없었는데 시험을 보러 가려니까 어머니가 큰 나무로 함지를 만들어 목욕을 시켜 주셨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경찰시험을 보러 갔고 합격을 해 강원도 경찰학교에 입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임시로 강원도 여자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데 1·4후퇴 이전에 춘천 11월 18일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인민군이 양구 산에 올라가 낮에 폭격을 가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인민군 일개군단이었는데 우리 군이 후방이 빈 것을 알고 춘천 쪽에 공격을 가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강원도 사람이 많이 죽었습니다. 당시 교육받던 인원이 원산경찰서 창설요원들이었는데 그 사건 때 청량리까지 후퇴를 했다가 복귀했습니다. 저는 그때 10월 20일부로 정식경찰이 됐었습니다. 이후 다시 1·4후퇴가 이어졌고 고향으로 한참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경찰관으로서 51년 9월부터 52년 10월까지 지리산에서 공비토벌을 했습니다.

공비토벌이 끝나고 나서 경찰관을 그만두고 군인이 돼야겠다는 생각했고 53년 6월 10일에 정식 육군 군번을 받고 제주도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치열하게 전쟁이 전개됐고 먼저 배출된 훈련소 병사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우리 군이 속초항에 아침에 내리면 설악산에서 다 전사하는 악전고투였습니다. 인민군과의 전투는 너무나 치열했습니다. 저는 운이 좋아 훈련소에 전염병이 생겼고 훈련병 배출이 미뤄졌을 때에 휴전이 되어 살 수 있었습니다.

휴전될 당시 육군이었기 때문에 참전 유공자가 되었지만 실상은 경찰로 전쟁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경찰로서의 혜택은 하나도 없습니다. 휴전이 되고 이후 계속 군인으로 지내 73년까지에 제대했습니다.

어머니는 39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경찰이 되고 나서 바로 돌아가셨습니다. 인민군이 후퇴하다 저희 부락에 들이닥쳤는데 부락 사람들 중에 누가 아들이 경찰되었다고 말을 전했나 봅니다. 마을의 공회당으로 아버지를 끌고 가는데 어머니가 나서서 왜 죄도 없는 남편을 끌고 가느냐고 따지다 함께 끌려가셨습니다. 거기서 인민군들에게 매를 맞고 앓다 돌아가셨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생각을 하면목이 매이고 눈물이 납니다. 가슴에 맺힌 한이 되어 나이가 90세가 되었지만 어머니 생각이 날 때면 아직도 절절하고 울 수밖에 없습니다.

Q. 지인환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6·25참전유공자회의 당면과제는 무엇입니까.

A. 빨리 해야 될 것이 참전유공자 수당의 인상입니다. 현재 한 달에 32만원이 나옵니다. 이는 너무 적은 금액이라는 얘기가 이전부터 나오고 있으나 금액이 현실화 되지 않고 있습니다. 24만원에서 8만원 올라 32만원 된 것이 파격적인 인상이었으나 그래도 지나치게 적습니다. 본회의에서 새 회장을 선거해야 하는데 본 회장 후보들이 당선이 되면 꼭 수당인상을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현재 병장 월급이 63만 원 정도인데 이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회의 입장입니다.

탄금대전적지에서 기념촬영.

Q. 회원들에게 전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마디 해 주십시오.

A. 회원 분들을 만나면 언제나 마음 편하게 지내라는 말씀을 건넵니다. 목숨 바친 전쟁이고 적탄이 쏟아지는 상황에 살아남았지만 먼저가신 선혈들에게 죄송한 마음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라를 위했다는 보람을 가지고 항상 건강히 지내며 전우애를 도모했으면 합니다.

지인환 회장과 지역사업, 교육과 봉사를 위하여 노력하는 대한민국 6·25참전 유공자금천지회 회원 분들의 앞날에도 건승과 발전이 있기를 기원한다. 인터뷰 진행 중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지인환 회장의 눈물이 아직도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다.

이학성 기자  police0952@hanmail.net

<저작권자 © 뉴스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학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