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식 축산기업중앙회 충남지회장 충남지회장

한사람의 믿음이 사회를 밝게 변화시킨다. 예산의 자랑거리인 광시 한우 마을의 선구자인 매일한우타운의 대표인 김만식 축산기업회 충남지회장이 그 예가 되었다.

충청남도는 양반의 점잖은 문화가 살아있으며 곳곳으로 연결된 하천들과 풍성한 구릉지 산야의 배경이 되는 드넓은 곡창지대가 간석지와 연결되며 바다와 이어지며 함께 해안에서 들어오는 수산물 등의 농산물과 풍성한 먹거리가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깃들어있다.

윤봉길 의사 등의 애국지사의 출신지이며 추사 김정희 선생 등의 생애가 깃든 예향인 예산은 드넓은 예당 평야지대와 무한천과 삽교천, 인접한 서산 삽교 등의 해안지대의 사이에서 우리네 전통문화의 향과 맛이 깃들어있다. 특히 먹거리 중에서 예산을 대표하는 맛인 8미는 예산 소갈비, 예당 붕어찜, 예당 민물어죽, 삽다리 곱창, 수덕사 산채정식, 예산 장터국밥, 예산 국수, 광시 한우 가 있다. 특히 광시 한우가 예산의 명물로 인정받게 된 데에는 첫 자리에서 터전을 잡고 광시 한우의 품질 보존의 외길을 닦은 김만식 회장의 공은 광시면 일대에서 인정받고 있는 일이다.

 

광시 한우 마을의 선구자

축산물의 안전과 위생을 책임지는 교육을 담당하는 지역민의 먹거리 사수에 중요한 기관인 축산기업중앙회 김만식 충남지회장은 고향인 예산에서 터잡아 광시 한우마을을 직접 일군 선구자로 대외에 알려져있다.

김 회장은 광시 한우 마을의 산증인이며 예산 8미에 당당히 들게 한 장본인으로 광시면 지역민들에게 든든한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다. 그는 2017년 대한민국 각 분야에서 탁월한 리더십과 사회 발전에 뛰어난 공헌을 한 인물로서 해당 분야의 추천으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사절차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수 있는 인물에게 시상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 의정대상’을 받았다. 또한 그는 충남도와 예산군 축산기업협의회장과 함께 광시면 번영회장에 추대되고 연임하며 조용히 지역봉사와 주민의 편익증진을 위해 일해오고 있는 진정한 숨은 일꾼으로 결식 아동돕기, 장학금전달, 경노사상 고취, 청소년선도와 지역경제를 살리고 광시한우 마을을 브랜드화하는데 결정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김만식 회장은 예산군수 표창(2002.4)과 충남도지사 표창(2007.5), 제4회 대한민국사회공헌대상(2012.12)과 고객감동경영BRAND대상(2013.1),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2013.12)과 충청남도교육감표창(2014.12)을, 대한민국 소비자 선호 브랜드 대상(2017)과 Best Innovation 기업&브랜드 상(2017), 제14회 자랑스런 예산인상 봉사부문 (2019) 등등을 수상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사태 속에서 요식업계의 피해를 걱정하는 중에도 김만식 대표의 ‘매일한우타운’에서는 평일 점심시간에도 많은 차들이 넓은 주차장을 꽉 채우고 원조 광시 한우를 맛보려 오는 손님으로 만석이 된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나온 그는 이제 독학으로 신한서대 한우경영학박사 1호 학위를 받아 당당히 마을을 일군 명사로 대우받는다. 광시 한우 마을에서는 지역사회의 ‘롤모델’로 지역민 후배들의 큰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는 리더십의 김만식 회장에 대해서 그의 젊은 눈빛과 신념에 찬 언행 속에서 드러난 열정적 성공담에서 이 시대의 젊은 세대의 고민을 극복할 희망의 해법을 찾을 수 있었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한 힘, 가족 사랑

김만식 회장이 광시한우 마을에서 사업을 시작한지 2020년 6월로 39년 2개월이 되었다.

김 회장은 “정상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밤잠을 못자면서 도전했다”고 밝혔다. 그는 5세 때 부친상을 당했다. 3남1녀의 2남으로서 어머니와 함께 가정을 꾸리기 위해 그는 어려서부터 연탄을 배달하고 아이스케키를 팔고 고철을 모으러 다녔다. 솔방울을 따서 대장간으로 팔러 다녔으며 파출소 소사부터 동 사무소 소사와 우체국 전보 배달 등의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김만식 회장은 춥고 배고프고 외로운 어린 시절을 겪고 극복하면서 정직하고 정열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 그는 십대에 돈벌이를 위해 서울로 상경해서 청량리에서 소주 배달과 우유 배달, 아이스크림 배달, 버스 조수, 다시 고향으로 와서 홍성에서 채소 튀김 가게를 하고 닭 튀김 가게를 하면서 돈을 모으고 어머니와 형제들을 부양했다. 김만식 회장은 버스 조수로 일하던 22세 때 당시 19세인 부인 최화열 씨와 만나서 한동안 연애 이후 다소 이른 나이에 화촉을 밝혔다.

이때 김 회장은 채소튀김 가게를 경영하는 중 폐결핵에 걸려 크게 아프기도 했지만 간호사 자격증을 따고 6개월의 투병생활동안 헌신적으로 돌본 부인의 덕분으로 살아나기도 했고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다친 그를 온전하게 치료하며 돌보아 1남1녀의 당당한 가장으로 역할을 다했다. 한편 그는 늘 더운 밥을 차려주며 사랑을 베풀어준 한평생의 동반자인 부인을 2019년 루게릭 병으로 잃어 모신 대전공원묘지를 자주 찾는다.

김 회장은 “우리 내자가 고생을 많이 했다”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광시 한우를 예산 8미의 자랑거리로 키우다

김 회장은 24세에 고향 예산으로 돌아와 광시면에서 소규모로 소를 키워 1981년부터 정육식당인 ‘매일식육점’을 열었고 광시면 상인회를 발족해 초대상인으로 추대되고 상인 회원간 화합도모를 하여 모든 서비스질을 개선하며 광시 한우 상품성을 홍보하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전국에 홍보되면서 광시 한우의 명성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광시 한우의 명성이 높아지자 수입고기나 이력추적 안되는 값싼 육우를 파는 사람들이 광시에서 장사를 하여 신뢰를 상하게 하기도 해서 쫓아낼 명분이 없어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고 한다. 한우중매도인 30번의 김 회장은 직접 정육점을 내면서 사람이 몰려들어 웬만큼 자리를 잡으면 다른 사람에게 가게를 내주기까지 하면서 비범한 노력과 열정의 리더십으로 광시 한우 마을의 발전을 일구었다.

광시 한우마을의 선구자로서의 길

생기 가득한 젊은이의 눈빛을 가지고 있는 김 회장은 그동안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당당하게 걸어왔으며 망한 고기집 자리였던 곳에 주변 집 11채의 터가 합쳐져 오늘날 ‘매일한우타운’이 서게 되었다. 김 회장은 “밤낮으로 밤을 새며 일했고 불의에는 타협하지 않았으며, 경쟁에서 져본적이 없다. 술, 담배, 화투, 골프를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며 그동안의 과정을 술회했다.

김회장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된다. “생산자가 있고 판매자가 있는데 소도 우리 가족과 내가 먹는다는 각오와 정신력으로 소를 관리해서 광시 한우를 최고의 고급육 브랜드로 사양관리를 철저히 했다. 소비자들이 사먹었을 때 ‘역시 한우는 틀리다. 미국 호주 등의 수입산과는 비교가 안된다’는 느낌을 주어왔다. 또한 내 가족이 먹는 것처럼 위생적으로 관리했다”고 설명한 그는 “판매자들이 저등급 고기로 성공하던 옛날처럼 장난치면 안된다.

최고 등급으로 판매하고 식당도 그런 고기를 써야한다.”고 덧붙였다. 가장 맛있는 고기는 새끼를 낳은 30개월 정도의 국내산 암소로 김 회장은 설명한다. 원래 700 여두의 직영농장을 300두 정도의 물량으로 줄여서 조달하고 또 매일 새벽 3시에 홍성 우시장에서 도축한 암소를 들여와 판매하며 이 때문에 광시 한우타운에서 판매되는 한우의 9할 이상 대부분 상인이 운영하는 직영 농장에서 공급받아 판매하고 있다. 축산기업인회 5~8대 예산군지부장으로 그만의 리더십과 뚝심으로 소고기이력제가 정착되는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축산인들의 실익증진 및 권익보호에 앞장서서 충남축산인의 위상을 높이는데 일조했다고 평가받는 김만식 회장은 1++등급의 암소를 도축한 고기로 담백하고 깊은 맛을 내고 연한 육질을 가지는 엄격한 품질관리로 광시 한우의 명성을 세상에 알렸다.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조합원은 앞으로 질 좋은 고기를 판매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화장실 가기 전과 후가 다르다고 하여도 성공하려면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한다.

특히 재무관리를 잘해야 한다. 돈이 좀 있으면 자존심 세운다고 목에 힘을 주는데 돈을 벌어도 부모님께만 기대지 말고 젊을 때부터 벌어야 한다”고 젊은 세대에게 충고했다. “믿음, 신용, 매너, 배려, 신뢰, 진실을 사람의 가져야할 태도 즉 에티켓으로 삼는다”는 김만식 회장. “너무 앞서가지 말고 너무 잘난 척하지 말고, 있는 척도 말고 끌지 말고 중간만 가자, 중용을 지키고 앞만 보고 가자. 삶이 얼렁뚱땅해서는 안된다”는 지론을 밝힌다.

매월 건강보험료만 287만원 가량을 납부하는 모범 납세자이기도한 그는 직접 세금을 쓰는 사람 아니라 자수성가한 자비를 들여 예산의 명물이 된 광시 한우를 알리고 자비를 들여서 광시 한우마을 키워왔다.

또한 김 회장은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구제역방지를 위해서 500여만원의 성금을 내고 한우 마을 축제와 주변 예당호 낚시축제 때는 한우 한두마리를 매해 기증하고 대한노인회 예산군 광시면 분회에 성금 백만원과 고기류 53만원 상당을 기증하는 등등의 활동으로 꾸준히 이웃을 돌보아왔다. 그는 지자체에서 애국자들에게 공로에 맞는 올바른 예우를 하는 문화를 함께 가꾸기를 바란다. “값싼 고기만으로 부자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최고로 사람은 먹어야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무너져도 계속 쌓아야 한다. 누구나 언제 죽는 것을 보증은 못하는데 자신과 가족과 나라를 위해서 늘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고 밝힌 그는 외부에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광시 한우의 참맛을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을 같이 비추었다. 예산에 가면 최고의 한우만을 취급하는 광시 한우 마을에서 선구자인 김만식 회장의 성공의 비결을 직접 맛보고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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