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19번 국도

                                                   조 서 희

영화처럼 빨간 오픈카를 타고서라면 더 좋겠지만

오래된 구식 자동차로 달리는 맛도 괜찮다

꽃눈 날리는 섬진강 19번 국도

벚꽃에 하늘을 빼앗긴 지 오래

가도 가도 끝나지 않는 꽃말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걸어가는 벚꽃들에

정이 핀다

사랑이 핀다

차 지나간 자리 바람 일면

수북이 떨어진 꽃잎

다시 솟구치며 따라오고

연분홍 배웅을 받으며

햇볕이 몸을 뉜 산과 들

오후 3시 강이

느리게 느리게 흐르고 있다

섬진강 건너편

산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붉은빛 물비늘 강물 젖어 들 즈음

재첩 잡던 섬진강 어부들도 하나둘 포구로 돌아오고

그 배 뒷머리

지지배배 노래 부르던 새들도 따라오고

벚꽃 마음도 그들 따라 날아오른다

 

자다가도 일어나 달려가고픈 곳, 섬진강 19번 국도

끝이 있으나 되돌아갈 수 없는 일방통행, 우리는 그 길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이별도 사랑도 고독도 그리움을 고이게 하지요. 살다 보면 꼭 여민 틈새로 그렁그렁 맺힌 그리움들이 툭 터져 나와 마음을 힘들게 할 때가 있지요.

그럴 때가 시를 읽을 때입니다. 섬진강 벚꽃길이 아니더라도, 바람 부는 들녘이든 어두운 골방 한쪽 조그마한 책상 어디에서라도 그때 시 한 편 읽을 수 있다면, 마음이 점차 풀어져 분명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고,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입니다.

 

이제 독자 여러분과 함께 여행을 떠나볼까요.

봄이 찾아오면 문득 물의 속살이 아름다운 섬진강이 떠오른다. 섬진강 변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 잎들이 눈처럼 날리는 그곳을 나는 차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봄이 오면 한걸음에 내닫고 싶은 섬진강 19번 국도. 반짝이는 강물 위로 매화꽃 향기가 떠오르면 섬진강에는 비로소 봄이 찾아온다. 하얀 꽃 노란 속살, 섬진강 물길 따라 흐드러지게 핀 매화는 강물도 내 마음도 금세 취하게 한다. 매화꽃 질 무렵의 하늘엔 졸음에서 막 깨어난 벚나무가 팝콘 터뜨리듯 꽃을 피워내고, 바람은 어두컴컴한 터널 안에 화사한 벚꽃 길을 연다. 햇볕에 몸을 뉜 산비탈의 연초록 차나무는 꽃길 끝에 서서 미움도 마음도 어지러움도 모두 반겨 준다. 붉은빛 물비늘이 강물에 젖어 들 즈음엔 거랭이 들고 재첩 잡던 어부들도 노을을 낚으며 하나둘 나루로 돌아온다.

섬진강의 봄은 싱싱하고 맛나다. 재첩국 한 사발이면 어제 마신 취기도 사라지고 속이 시원해진다. 섬진강에 오면 처음 만나는 생경함과 인심 좋은 사람들로 마음이 포근해진다. 절제된 언어로 자연의 일부를 삶 속으로 끌어오는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왜 섬진강을 떠나지 못하는지 이곳에 오면 알게 된다.

무심히 흐르는 세월은 내게 섬진강처럼 살라 한다. 봄비의 속삭임에 더러는 피고 더러는 지는, 강물도 내 마음도 꽃그늘 아래 흔들린다. 나는 그런 섬진강의 물살이 그리고 햇살이 되고 싶다. 어느새 내 마음은 벚꽃 흐드러지게 핀 섬진강 19번 도로를 달리고 있다.

나는 섬진강 물살 햇살이 되고 싶다.

 

조서희. 시인. 문학평론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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