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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몽선사 불능용불조지궁
  • 김유혁 칼럼
  • 승인 2020.01.08 12:52
  • 호수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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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중국 고전 중 신론(新論)에 나오는 말이다. 봉몽(逢夢)은 하(夏)나라 시대 사람으로서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조부(造父)는 주(周)나라 시대 사람으로서 말을 잘 타고, 특히 다두마차(多頭馬車)를 잘 다루는 기사로서 알려진 사람이다.

그 언훈(諺訓)의 뜻은, 세상만사에 있어서 건전한 식견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귀 담아 듣지 말고, 전문적인 능력을 지닌 자가 아니라면 자랑만 내 세우는 자와는 일을 함께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경언(警諺)이다.

논어(論語)에서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작은 닭 한 마리 잡는데 소 잡을 때 쓰는 칼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割鷄에 焉用牛刀리요). 적재적구(適材適具)하라는 말이다. 즉 닭을 잡을 때에는 닭 잡는데 걸맞은 용구를 써야한다는 뜻으로, 이는 식견과 능력이 부족한 자에게 높은 관직과 과분한 직책을 맡긴다면 목적가치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맹자의 공손축장(公孫丑章)에서 보면 언유사병(言有四炳)이라는 글귀가 나온다. 그것은 피사, 음사, 사사, 둔사(詖辭, 淫辭, 邪辭, 遁辭)를 말한다. 피사란 대화 중 무엇인가를 숨기는 자의 말을 이르는 지기소폐(知其所蔽)임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음사는 음모를 음탕한 말로 얼버무리려는 말을 늘어놓는 수법으로서 지기소함(知其所陷)임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사사는 지기소리(知其所離)로서 어디론가 꽁무니를 빼며 도망치려는 자의 말임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둔사는 지기소궁(知其所窮)으로서 어딘가 궁색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자의 말임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부류들이 끼치는 해악이 무엇이냐 하면, 크고 작고 간에 정도(正道)와 사리(事理)를 문란하게 만드는 악성분자라고 맹자는 혹평하고 있다. 그것은 바꾸어서 말하면 심성의 바탕이 무너지고 있음을 귀띔 해 주는 것 이라고 한다. 특히 그런 무리들은 호명자(好名者)요. 아울러 호리자(好利者)이기 때문임을 알려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조율되지 않은 활(不調之弓)이요. 훈련되지 않은 말(不服之馬)과 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호명자는 자신의 공명과 관련되는 일만을 골라 탐내므로 아무리 정의로운 일이라 해도 그들은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하여 호명자 유소불위(有所不爲)라 하고, 호리자는 자신의 이욕충족을 위한 일이라면 청탁과 비리 부정도 가리지 않고 무슨 짓이든 다한다하여 호리자는 무소불위(無所不爲)라고 한다.

올바로 된 사람의 경우에는 부당한 일이라면 어떠한 유혹에도 끌려가지 않을 수 있을 것이고(有所不爲), 정의로운 일이라면 크고 작든 견의수명(見義授命)하는 의기(義氣)를 발휘 할 것이다((無所不爲). 봉봉과 조부의 예언(例諺)이 비록 고전에서 말해주고 있지만 우리들로서는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책임을 져야 할 지위에 있는 자 일수록 시비곡직(是非曲直)에 관한 양편쪽 말을 다 들을 줄 알아야 겸청제명(兼聽齊明)하는 밝은 길을 열어갈 수 있고, 현실을 호도(糊塗)하는 아첨배의 추종을 떨쳐버릴 수 있다.

내 말 잘 따르는 자는 충직하고 나에게 바른말 해주는 무리는 역도라고 여기는 이른바 순기자정하고 도기자부정(順氣者正 導己者不正)하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을 스스로 불식시켜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금 고위층의 비리로 국론분열로 치닫는 현실에서 위정자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恒山 金 裕 赫

단국대학교 종신명예교수. 석좌교수

주요저서

▲달리는 한국인(중역)

▲전통윤리와 현대사회

▲세계도시 시스템(한역)

▲새마을과 Ger-Model Town

▲우리에게 이퇴계는 누구인가

▲인간과 사회ㆍ어린이와 어른

▲도처유시ㆍ청담(주편)

▲미투리신사와 시의 마당

▲제왕학 제1ㆍ2ㆍ3권 등이 있다.

김유혁 박사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도시학을 전공했으며, 단국대학교 부총장과 금강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바 있다.또한 안중근의사 기념관장과 한국지역사회개발학회장, 퇴계학연구원 이사 등을 지냈으며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을 맡아 과거 새마을운동의 발전과 중흥에도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김유혁 칼럼  news05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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