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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통으로 이루는 희망
  • 유희석 기자
  • 승인 2020.01.08 12:48
  • 호수 286
  • 댓글 0
유희석 취재팀장

2019년은 대한민국에서 문화적으로는 BTS, 영화 기생충 열풍으로 한류의 맥이 융성해지는 보람이 있었지만 세대와 계층, 그리고 이념적인 갈등으로 고심한 한해로 기억될 것이다. 2020년 경자년 희망찬 새해를 위하여 아직도 산재된 사회 문제에 대한 청년실업,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1위인 노인빈곤율, 해체되는 가정, 빈부격차, 좌우갈등 등의 근본적인 해법을 생각하게 되는 바로 지금이다.

착한 사람들이 잘 사는 풍요로운 세상을 원하는 일반적인 사람은 자신의 자유의지로서의 양심과 욕심의 개념 차이를 통하여 일반적으로 선과 악을 식별하고 빛과 어두움을 분별한다. 관심과 집중의 소통을 통하여 무관심과 집착, 소외 속의 경제적 어려움이 없이 자신과 가족의 재화를 이루고 관리하는 평화롭고 건강한 삶을 최고의 복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공평하지 않은 사회에서도 정의로운 질서를 추구하고 평안한 삶을 위하여 경제적 안정을 추구할 때조차도 선한 의지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단지 그런 우리에게 경제적인 이익이 생존과 연결되는 위기의식은 때로는 양심과 욕심의 경계에서의 영구적인 딜레마를 느끼게 만든다.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며 사회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전문적인 식견으로 각자의 위치에서 인정을 받아 사회에서 입지와 상황을 만든다. 이때 생존에 직결된 사업성을 늘 염두에 두면서 쉽게 망각되는 마음 안의 선의이며 분별하는 지혜인 양심을 지키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는 비정한 공감대마저 느끼는 무거운 현실이다.

선한 의지인 양심에 충실한 사회는 어떤 식으로 발전하게 될지 광범위하지만 이해를 구체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성선설과 성악설의 지식을 넘은 이전의 지혜로서 내재적 생명력 안에서 분별하고 마음 안의 질서를 잡는 양심으로 사회적 신뢰로 서로 연결되려 노력하는 소통으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돈을 가지기 위한 모든 수단들이 필요 이상으로 정당화되면서 도덕성이 무너지기도 했다. 일례로 물질주의 사회에서 외로운 일부 남녀 사이에서 쉽게 신뢰를 이루려다 방황하며 혼인의 신뢰성 근거를 해치기도 했다.

그래서 이혼으로 사회의 근간인 가정이 해체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폐해로 치부되기도 했다. 또한 마음 안의 선의가 그렇게 이용당할 수 있는 약점으로까지 매도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인류의 지혜이며 사회적 동력인 양심을 지키는 자유의지의 선택은 용기로 표현되며 소통의 이상으로 지켜져 왔다.

이 본성적 생명력의 끈기로 시험과 시련,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 자체에 대해서 경쟁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긴다는 말을 쓴다. 그리고 이런 용기의 승리를 사회적 신뢰로 이루는 계기를 진리에 대한 종교적 믿음의 희망으로 돋운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그리스도, 마호메트 등의 양심의 상징된 성현들의 삶으로 영원하고 절대적인 시간 속의 인류 보편가치의 희망을 되새기곤 한다. 일례로 사람은 ‘마더 테레사 효과’ 처럼 물질적으로는 불가능할 듯해도 일어나는 종교적 봉사를 통한 행복한 사회성의 치유를 추구하기도 한다. 종교가 단순이 개인의 양심만의 이상 보다는 사회를 이루는 선순환의 소통을 위한 근거로 받아들여질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편 순수한 양심으로 종교를 추구하려는, 한국민과 인류의 보편가치에서 변이되어 독점적 집단성의 욕심으로 영업성을 추구하는 몇몇 종교 집단들에게서도 반면교사적 예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소통의지로 종교를 분별할 필요성을 느끼곤 한다.

또한 우리가 정치에 대하여 각자의 양심이 연대된 하나된 의지로 상징화되는 정치권력의 정의를 찾게 된다. 또한 국민들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한 욕심을 소통의지를 대신해서 드러내는 정치인의 특성에 대하여 염증을 느끼며 불신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정치에 대하여 희망적인 관점을 피력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게 보이기도 한다.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지금 각각 후보의 진실한 양심을 이해하는 소통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유권자로서 표심을 보다 긍정적으로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뜻이 모이면 길이 나고 서로 통하니 국민의 권리와 의무로서의 올바른 사회를 이루려는 소통의지로 선거를 치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회인은 각자의 믿음과 경험 그리고 이해관계에 따라서 유권자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국가 공동체성의 향방을, 소통을 위한 진보와 소유적 보수의 선택의 정치로서 결정한다.

심지어 사람들은 인생무상의 개념처럼 편향적이지 않으려는 의지를 드러내려 정치 불신의 감정을 소신처럼 보이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관심여부조차 우리의 정치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하여 반면교사적 교훈으로부터도 온전한 소통의 지향을 찾아야 할 당위를 느끼고 있다. 일례로 국가의 상징인 국기를 단순히 한 정파의 상징으로 호도하는 일도 있어 왔다. 또한 각자의 양심과 욕심의 차이의 방향성의 차이로 소통의 근본을 잊어가는 정파적 경향성도 있어 왔다. 이와 같이 자칫 잊고 지내는 부분에서부터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국가 공동체의 이상인 공정하고 올바른 사회를 위하여 연대하도록 우리 각자의 양심을 끄집어내어 서로 연결할 시점이다.

경제에서도 서로의 양심을 끄집어내는 소통의지가 건전한 국가에서 경제성장이 온전하게 가능하다. 빈익빈부익부 악순환이 심화되는 사회에서 생존 본능적 위기감에 공동체의 양심이 왜곡된 것으로 1차 대전 후 독일 국민들의 불만을 이용한 히틀러의 권모술수로 독일을 나치전범국가로 만든 역사적인 악치의 일례로 있었다.

결과에 집착된 정치경제 관념에서 거대 독점 기업의 성장 속에서 심화되는 빈익빈부익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양심에 집중하며 서로 깨어나는 의지를 모으는 공동체성인 소통을 경제의 선순환을 돕고 공동체의 행복한 먹을거리를 늘려가기 위하여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면 경제적인 자립을 이루려는 젊은이들의 활동력으로 둘숨날숨의 선순환적 교육성이 경제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양심적 국민성으로 국가 정체성을 이룬다면 세계인들로부터의 신뢰도 늘어나며 그만큼 세계의 관심과 자본도 유입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사회적 신뢰가 문화적 근성과 함께 국가의 문화 수준으로 높아지면서 동서양에서 선진국가성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소외된 타인의 아픔을 무시하기보다 자신의 고통으로도 동일시하고 억울하지 않도록 연민을 가지는 정서를 통하여 사회에 온기가 생기고 경제적으로도 극도로 소외된 계층의 재활의 계기와 자생의 여지 또한 많아질 것이다.

한편, 초고령 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세계 1위인 노인빈곤의 문제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무거운 주제가 되고 있다. 공짜와 당연한 것과 비밀이 없는 이 세상에서 누구나 생로병사의 문제를 살면서 겪게 되어서 이런 과정에 대한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청장년 실업 문제처럼 노년에 빈곤을 겪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 모두가 바로 이 문제에 대하여 모두가 다 알지만 남모르는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사회에 선순환의 활력소를 부여할 소통의 권리와 의무 또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같은 문제나 대상이라도 바라보는 시간적 관점의 차이에서 다르게 보여질 수 있다는 선순환적인 해결을 위하는 지혜를 대입할 때이다. 각자의 양심이 연대하는 민주주의 정치의 근본을 이루기 위하여 본성적 양심에 대한 신뢰를 함께 높이는 소통이 필요한 지금이다. 지금 필자는 다시 용기를 내어 소통의 가치기준을 제시해본다. 온전한 선만이 악을 이길 수 있다. 용기 있고 선량한 소통의지인 민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시대가 시작되도록 구체적인 담론을 위해 우리의 양심에 집중하여 선택하여야 할 것이다. 양심으로 깨어나와 서로 함께 이겨내고 연대하며 행동해야할 지금이다.

유희석 기자  nickyoo26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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