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국대학교 종신명예교수. 석좌교수

이는 한말(漢末)의 서간(徐榦:171-218)의 저서, 중론(中論)에 나오는 말이다.

서간은 48세라는 짧은 인생을 살고 갔지만 그 당시 7대 문호(文豪)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중론은 현재에 있어서도 많은 후학들이 관심을 기우리고 있다.

원문 그대로 인용한다면, 누구의 경우를 막론하고 홀로의 생각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고 어디에선가 정체(停滯)되기 쉽다하여 그런 현상을 체이불통(滯而不通)이라 한다. 산길이 이어지다가 절벽에 부닥쳐 끊기게 되는 경우처럼 불통상태에 봉착하게 될 수 있다. 절벽을 넘어 설 수 있는 천로(穿路)가 마련되지 않는 한, 기존의 산길은 폐로(閉路)가 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논리가 엄존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사람들의 의사가 원칙적으로 원활하게 종횡연관(縱橫聯關) 구조적으로 불체유통(不滯流通)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곧 토론의 보장이요 하의상통(下意上通)과 상의하달(上意下達)의 네트웍이 사회적으로 건재함을 의미한다. 그것이 질서와 책임을 수반하는 의사유통의 자유인 것이다. 그리고 자유시장경제원리는 기본적으로 모든 물류(物流)의 합리화를 의미한다. 즉 기술의 유통과 물류의 계열화 및 새로운 정보의 호완적 유통의 활성화 등을 통하여 상호 전진하는 호진원리(互進原理)와 아울러 도약을 다짐하는 병진원리(竝進原理)를 바탕으로 하여 사회적 잠재역량(social potentiality)을 확충해가는 것을 말한다.

호진원리는 사람이 보행할 때 양 발이 서로 바뀌어 전진하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것을 말하며, 도약의 병진원리는 새가 비상할 때 양 쪽의 발을 동시에 이륙시켜서 비상(飛翔)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와 같은 역동성의 사회화가 곧 자유시장경제원리의 생태인 것이다.

독사자의 생각과 정책은 그 자체 속에 침전(沈澱)되어 있는 장애요인이 불식되지 않는 한, 체이불통과 곤이불취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인간은 본시 사회적 동물이라 말하는 것은, 홀로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한편으로는 분화적(分化的) 개체(個體)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협력(合力)하여야 하는 숙명을 띤 성원(成員)인 것이다. 필자가 자주 애용하는 옛 훈구(訓句) 이거니와, 현신(賢臣)은 민심을 다스리고, 능신(能臣)은 민생(民生)을 다스린다 했거니와, 민심은 설득력 있는 철학적 논리로서 감화와 감동을 통하여 화합된 분위기를 성숙시켜갈 수 있다. 민생문제는 일상적인 감습(感習)과 의욕과 창신적(創新的)인 도전의지로서 발상과 기능 및 기술의 역량을 결합해가는 선의갱생 풍토를 스스로 다져가는 가운데 민생현장의 기풍이 진작돼 가는 것이다.

논어에 민무신이면 민불립(民無信 民不立)이라는 구절이 있다. 치자집단에서 백성들이 굳게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준다면 백성들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 바꾸어서 말하면 백성들은 치자집단의 믿음을 먹고 살아가는 생류(生類)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고지도자는 언제나 현신(賢臣)과 능신(能臣)의 값진 잠재역량을 십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군주에게는 군주대로, 대신에게는 대신대로 각각 절감해야할 말이 늘 따라다니고 있는 것이다. 즉, 군위난 대신불이(君爲難, 大臣不易)라는 말이 그것이다.

군주는 소임을 다하기 어렵고, 대신은 맡은바 역능(役能)을 다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인지유단 사기무궁(人智有短 事機無窮)이라는 말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저마다 느끼는 인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관점(共觀点:synoptic view)을 찾아서 이른바, 독사자의 체이불통과 독위자의 곤이불취라는 장벽을 먼저 제거하는데 집주(集注)해야 한다. 이것이 치자와 피치자 함께 살아가면서 발전해 갈 수 있는 최선의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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