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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영속적 평화를 위해 6·25전쟁의 기억을 잊지 않아야...
  • 이현승 기자
  • 승인 2019.08.07 08:50
  • 호수 282
  • 댓글 0
연병권 6·25참전유공자회 충북지부장

6·25전쟁의 참담한 상황 속에서 희생된 참전용사들의 현재 생활이 녹록치 않은 상태다.

이들 참전용사들은 일년 에만 400~500명씩 생을 마감하고 있으며 현재 충청북도에 남아 있는 참전 용사는 3천900명 정도로 이들이 모두 사망하고 만다면 전쟁의 참혹했던 기억이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 들어 기억에서 잊혀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 있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참혹한 전쟁이 한반도에서 다시 발발하는 일이 없도록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는 기억 속에 안보에 관한 의식을 후세에 심어주어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 같은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6·25참전유공자회 연병권 충청북도 지부장은 남은 참전용사들이 앞으로는 생활고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영위케 하고 안보의식 고취를 위한 ‘평화수호를 위한 6·25 실증 교육’을 진행해 지난날의 뼈아픈 역사가 이 땅에 다시는 반복 되지 않기 위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연병권 충청북도 지부장은 자신의 안보관을 자세히 밝히며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개인적 의견 역시 개진했다.

연병권 충청북도 지부장의 안보관과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개인적 의견

올해는 6·25전쟁 종전 후 69주년이 되는 해다. 무려 약 70여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참전유공자회는 6·25전쟁에 대한 역사 강의를 지속하고 있지만 국민과 학생들이 전쟁의 참혹상을 얼마만큼 마음속 깊이 받아들일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후손에게 전쟁에 대한 역사를 교훈 삼고 미래를 준비케 하는 유공자회원들의 소원은 조국 대한민국의 부국과 평화통일 뿐이다. 이는 북한의 입장과 태도에 연관 되어 있기에 보훈단체와 국민들은 항상 염려를 하고 있다. 위정자들이 국민들의 튼튼한 자주국방과 평화 통일에 대한 열망을 잘 읽고 위국헌신의 마음으로 나라를 이끌어 주길 바라고 있다.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연병권 충청북도지부장은 국가유공자 지정에 대한 명분이 없다는 의견이 많다는 점을 참고해서 설명하고 있다. 당시 민주화 운동이 폭동이냐, 민주화운동이냐 혹은 북한의 선동에 의한 사태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에 대해서는 그동안 논의가 별로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에서 특수부대가 일부 내려왔다는 주장들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 증거가 확실한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극우측의 주장의 증거가 자세히 확인이 안 되어 확신이 없다는 것이고 이는 국민들도 전혀 알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관해서만 의견을 밝히자면 광주 시민들이 분노해 사태가 일어났다는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왜 분노하였는가에 대한 원인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한 강조였고 그의 의견은 과거 민주화 열망에 대한 불만들이 많았을 것인데 그런 불만들이 응집되어 터져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일반 국민들은 한 개 지방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확실히 모를 수 있다. 그래서 한도시에 관계된 사건에 그렇게 많은 보상금을 줬느냐 하는 의구심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5.18 국가 유공자 지정 에 잡음이 많은 것은 국민들의 화합차원서 바람직하지 않은바 명단을 공개치 않고 있는 문제가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음을 직시하고 이를 공개하여 국민들의 궁금증이 해소되고 당사자들도 떳떳해질 것이고 본인들도 오히려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왜 공개치 않는지 충청북도 지부장은 반문하고 있다.

세대 변화로 단절될 수 있는 6·25의 기억을 이어가기 위해

현재 6.25참전유공자회 충북지부는 국가유공자후손이 정회원이 되는 단체설립법이 국회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어 후손들이 단체를 이끌어 나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법안은 현재 계류중에 있는 상태다.

참전유공자회원은 현재 11만 정도만 생존해 계시다. 일년에 약4~5백명이 사망하는 현실이다. 유공자회 측에서는 앞으로 5년이면 참전유공자회원들이 거의 사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6·25참전유공자회가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참전유공자회는 후손들이 단체를 설립해 전쟁에 대한 기억을 보존해주길 바라고 있다. 6·25를 잊을 수 없다는 필요에서 그런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고 한다 6.25참전유공자후손화 설립 법안이 국회를 통과 하면 단체가 영속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참혹한 역사가 되풀이 될 우려가 있다는 생각에 참전유공자후손회를 만들고 전쟁의 참혹상을 알려 다시는 한반도 내에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기고 싶다고 한다. 주된 활동은 ‘평화수호를위한 6·25전쟁바로알기교육’이라는 안보교육이다. 이는 전국적으로 실시되며 충북서만 일년에 60학교를 찾고 있다. 초.중.고.대,학군단(ROTC) 5개별 교육과정으로 나뉘며 강의는 6·25 전쟁 실증교육을 할 수 있는 전문 강사가 맡는다. 이들이 전문교육을 하고 지부장과 각 시군 지회장이 나서 당시에 겪은 사건에 대한 증언을 하는 형식이다.

현재 충북에는 참전용사가 3천900명이 살아있다. 그들은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내놨던 전쟁에서 그 당시 참혹상과 위험성을 알리고자 한다는 참전유공자회원들의 간절한 역사 교육의 동기가 우리들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생활이 어려운 참전 용사가 많아 최저 생활을 보장해 주길 바라다.

최소로 요구하는 바는 생활에 보탬을 달라는 의미로 명예수당을 인상해 주길 바라고 있다. 이도 각 시군마다 다 다르다. 보훈처에서 1인당 월 30만원을 보조하며 충북의 경우는 지자체서 1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모두 합해 월 40만원을 받고 있으며 유공자 본인만 수급한다. 유공자회는 최저생활비 60만원은 있어야 생활의 어려움이 덜하다는 의견이다. 충북은 37사단서 보금자리 주택으로 유공자회원들 대상으로 무주택자에게 거주지를 마련해 주는데 회원이 약 3천9백명 임에도 일년에 2채를 지원해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요지는 명예수당을 올려줬으면 하는 것이다. 유공자회측은 생존자 수가 적어 국가로는그리 높은 부담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본 생활비 문제를 유공자회측서는 항상 제기하는 문제다. 월 60만원은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보훈처의 슬로건인 ‘따뜻한 보훈’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수당을 올려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69년전 보국이라는 목표 하나로 목숨 걸고 전쟁에 임했다. 젊은 나이에 참전해 보통사람의 정상적인 삶을 보내지 못했다. 참전유공자 회원중에는 결혼은 물론 정상적 교육도 못 받은 회원들이 많다. 이들이 남은 여생이라도 편안히 살다 사망하기를 연병권 충청북도지부장은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6.25 전쟁중 피난길 징집

연병권 충청북도지부장은 6.25전쟁 발생초 충주중학교 재학중 이었다 그 당시는 고등학교가 없고 5~6년제 중학교만 있었던 시기였다. 6·25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이 시작되니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집에 머물다 1년 정도 후인 51년 중공군이 들어왔고 1·4후퇴때 피난민 대열해 합류해 부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학생신분으로 피난을 하다가 군인으로 징집되었고. 논산훈련소가 터를 잡을 때 훈련소의 설립 작업에 동원되었고 학도병으로 징집된 이후 52년도에 정식으로 훈련소에 입교 군번을 받고 훈련을 받았다.그당시 나이가 19살이었다.

연병권 충청북도지부장은 포병학교 훈련생이 되었고 포병학교 교장이 훈련생들에게 중학교 재학중이거나 졸업한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 보라 하여 손을 들었는데 400명 중에 4명이 손을 들었다고 한다. 그때 교장이 4명에게 수학공식을 질문하였는데 연병권 충청북도지부장 혼자만 답변을 하게 되었고 그날 부로 포대 교관으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이후 임무가 부여되어 중위계급장이 임시로 주어졌고 포를 쏠때 필요한 측량과 측정의 임무를 맡았다.

당시 사용되던 포에는 장약이라는 화약이 사용되었는데 6호까지 사용이 가능했다. 이 과정에서 측량과 측정을 잘못하면 아군진지로 포탄이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측량과 측정의 중요성을 의식해 최대한 포의 정밀도를 높여 공격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이후 제대까지 써베이포대에서 2년간 교관생활을 하였다.

끝으로

본래 고향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이다. 이후 충주로 중학교를 진학했고 전쟁이 끝나고 청주로 왔다.

55년도 3월에 제대를 해서 청주사범학교로 편입을 했다. 이후 교원생활을 하고 65세 정년을 채웠다. 마지막 학교가 청주시내 수곡초등학교며 교장으로 퇴임했다. 현재 나이 89세로 내년이면 90이 된다.

더불어 미래 세대를 위해 연병권 충청북도지부장은 “역사교육과 평화통일 형성에 기여하고 참전유공자회후손정회원화가 설립되어 6.25의 기억을 후손들이 이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며 “인애화합을 가훈으로 애국충성을 좌우명으로 하고 살아왔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연병권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충북지부장

곡산 연씨 족보편찬위원장 역임

충청북도 청렴서화 회장 역임

성균관 유도회 충청북도 본부 회장 역임

대한민국 6.25 참전 유공자회 충북지부장 역임중

교사. 교감. 장학사(관). 교장 45년 정년 퇴직

상훈. 표창

교육감 표창 3회 (충청북도)

국무총리 표창 1회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 2회 (대한민국)

국가훈장 동백장 1회 (대한민국)

이현승 기자  news05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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