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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조국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였는가!!!북파공작원 1만4천 명 중, 절반이 넘는 약 8천명 전사
  • 이종현 기자
  • 승인 2019.06.05 09:57
  • 호수 280
  • 댓글 0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이종열 회장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막대한 인명피해와 국토분단이라는 아픔을 겪었고 지금까지 군사적 긴장상태에 놓여있다. 종전 뒤에도 북한은 대한민국 사회에 불안감을 조성하고 국민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수많은 테러를 일삼아왔다. 조사된 바에 의하면, 해군 56함 피격침몰사건(68 당포함 침몰사건), 판문점 도끼만행사건(76), 아웅산 폭탄테러(83), KAL기 폭파사건(87), 강릉 무장공비침투사건(96), 제2연평해전(2002)을 비롯해 무려 250여건이 넘는 납치와 테러를 자행해왔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육군본부 정보국 창설에 이어, 해군첩보부대(UDU 48), 공군첩보부대(OSI 49), 육군첩보부대(HID 51), 속초 설악개발단(68), 해병상륙공작대(MIU 68, 1975년 해체)를 창설해, 남·북 대치 상태에서 간첩색출과 대 북한 비밀공작 업무를 수행하고 군의 정보 및 첩보업무를 담당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특수임무를 맡은 첩보부대는 양지가 아닌 음지에서 비밀리에 업무수행을 하는 것이 관례였고, 임무 중 희생자가 발생하더라도 세상에 밝혀지는 것이 금지되었다.

따라서 북한에 침투하여 작전을 수행하고, 또한 남파된 무장공비를 상대로 한 치열한 전투에서 많은 수훈을 세우고도 이름 없이 희생된 자들의 위국헌신이 적지 않았다. 세월이 지난 오늘날 수면위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도 이들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쟁기간 중엔 현역군인 중에서 선발해 임무를 수행토록 했지만, 1953년 휴전협정 조인 후엔 협정을 준수한다는 차원에서 민간인 신분의 요원을 선발해 북파공작을 했고 이들은 직급도 군번도 없어 사후에도 부정되어졌다. 이에 따라 뒤늦게 결성된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회장 이종열)는 암울했던 시대, 조국의 부름에 목숨도 마다하지 않았던 육·해·공군 첩보부대 출신의 대북공작요원 출신으로 응집된 국가 공법보훈단체이다. 지난 반세기 암울했던 분단의 역사 속에서 조국을 위해 음지에서 살신성인(殺身成仁)하며 보국한 이들의 특별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8년 창립해, 지금까지 회원들의 권익보호와 각종 봉사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제3, 4대(2014년, 2019년) 이종열 회장은 “유사시 적진에 깊숙이 침투해 비정규전 업무수행을 하던 중 전사·실종된 동료는 무려 8천여 명에 달한다”고 말하며, 그러나 “지금의 특수임무유공자회가 정부로부터 공법단체로 인정되기 전까지는 수많은 희생자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북파공작원, 혹은 인간병기라는 소모품으로 사회적인 소외와 갈등 속에서도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은 우리의 절대적인 자존심이었으며, 이제는 잃어버린 명예를 찾아 새로운 역사로 승화시켜 따뜻한 이웃, 건강한 시민단체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하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 봉사한 애국 혼으로써 민족정신 선양, 호국정신 함양, 대국민봉사활동에 헌신하여 최고의 애국공법단체로 도약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한편, 특수임무수행자란, 1948년 8월 15일부터 2002년 12월 31일 사이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간 중, 군 첩보부대에 소속되어 특수임무(특별한 내용·형태의 정보 수집 등을 목적으로 국가를 위한 특별한 희생이 요구되는 활동)를 한 사람이나 이와 관련한 교육훈련을 받은 자로서, 제4조 제2항 제1호에 의하여 특수임무 수행자로 인정된 자를 말한다. 또한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는 특수임무수행자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현재 서울에 본부를 두고 전국 17개 지부, 산하 146개 지회로 구성되어 운영하고 있으며, 3,205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사회공헌활동 최우수단체 수상

혹독한 훈련과 비인간적 대우 받았던 북파공작원

북파공작원, 즉 ‘특수임무수행자’는 유사시 적진에 깊숙이 침투해 비정규전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대한민국 사회에 분란과 혼란을 일삼았던 북한에 깊숙이 잠입해, 정찰과 감시, 주요 관공서나 군부대의 비밀문서를 절취해 오고, 요인을 암살하고 납치해오는 등의 전략정보 획득과 고급 공작임무뿐 아니라 휴전선 부근의 북한군 부대 교란, 긴요 장비나 무기 탈취 등의 전투정보 임무를 도맡아 활동했다.

또한 특수임무수행자는 적의 주요 군사시설 파괴, 후방교란 등과 같은 게릴라전 및 대테러작전과 대침투작전 등 특수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해상침투훈련, 고공강하훈련, 설한지 극복훈련, 고등산악훈련, 은신술 등과 같은 고난이도의 훈련을 받았고 적군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최고의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그 중에서도 인내심이 강하고 암기력과 지능, 운동능력, 성격 등 모든 부분에서 특출한 능력을 보유한 요원으로 편성되었다.

이종열 회장은 “그 당시 대부분 젊고 건장한 요원들은 은밀하게 찾아온 ‘물색관’의 감언이설에 포섭되어 테스트를 거쳤고, 최종적으로 선발되면 철저한 훈련을 통해 북파공작원으로 채용되었다”고 전하며, “우리는 입소하는 순간부터 오로지 나라의 명령에 따랐고, 단 한 번의 면회나 외출, 휴가도 없이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우리는 국가의 부름을 받았지만 양지가 아닌 음지에서의 그림자 같은 업무수행을 하는 것이 관례였고, 우리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훈련 중에 사망해도 묘지도 없었고, 살아서 나가더라도 수행해왔던 일에 대해선 철저히 비밀을 유지해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 예로 지난 1983년 12월 3일 부산 다대포로 침투한 무장간첩을 생포한 것은 당시 보도된 육군 초병이 격투 끝에 잡았다는 것이 아닌 북파공작원들이였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사전 정보에 의하면 5~6명이 탑승한 간첩선이 다대포 해안으로 접근해서 그중 2~3명이 다대포 해안으로 침투 "기간 산업파괴 및 고정간첩을 대동하고 귀환"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목적으로 침투하는 무장 간첩을 반드시 생포하라는 임무가 북파공작원에게 주어졌고, 생포를 위해서는 총기류을 지니고 있다가 급하면 사살 할 수도 있으니 박달나무 몽둥이와 수갑, 입자갈 등만 가지고 임무지역에 투입 되었다고 한다. 완전무장한 무장공비 2명이 해안으로 접근하는 것을 그야말로 맨손으로 생포한 것은 북파공작원들이었는데, 군 당국은 하사1명과 방위병이 잡았다고 발표한 것이었다. 이후 훈장과 포상이 이루어졌는데 정작 공을 세운 북파공작원들은 제외 되었다고 한다.

이에 30년이란 세월동안 숨겨져 오고 왜곡된 것을 바로 잡고 재평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덧붙여 “우리는 과거 귀환보장 없는 특수임무수행의 임무를 부여받고 생사를 초월한 극한 상황에서 온갖 훈련과 역경을 이겨낸 강인한 정신력을 소유하고 있다”며,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처절했던 수많은 기억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오직 나라를 위해서 일했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살고 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국가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희생한 사람들인데도 아직까지 음지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현실을 설명하며, “유공자들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가난 질병 등, 육체·정신적 상처로 후유증을 겪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따라서 “기필코 조직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해 우리 단체가 명실상부한 국가유공자 애국단체로서 정부와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사랑받는 단체가 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천명했다.

한편,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도로 훈련된 특수임무수행자들을 수차례 북측에 파견했고, 임무를 맡은 그들은 조국수호를 위해 격전지에서 목숨 걸고 싸웠지만 북측과의 관계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특수임무수행자들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북파공작원으로 양성된 군인들은 군번도 계급도 받지 못하고 암암리에 ‘전사자’로 처리되어 해당 유족들에게 어떠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요원들의 끊임없는 대정부 투쟁과 함께, 언론에서도 북파공작원 문제를 보도하는 등, 사회 일각에서 이들에게 정당한 피해 보상을 해야 한다는 꾸준한 지적이 있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의장과 국방부장관에게 북파공작원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들의 명예회복 및 보상을 규정한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렇게 수많은 사연을 겪은 끝에야 비로소 2007년 제17대 국회에서 ‘특수임무수행자 지원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2008년 1월 공법단체 ‘특수임무수행자회’가 발족됐으며, 2011년 8월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또한 ‘북파공작원’이란 명칭도 국민들에게 혐오감을 준다고 해서 ‘특수임무유공자’로 바뀐 것이다.

이종열 회장은 “쉽지 않게 출범한 만큼 특수임무유공자회에서는 희생자의 영혼을 추모하고 그들의 명예를 선양하는 일과 희생자의 유해 발굴 및 유가족 찾기, 생존자 송환 등의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고 말하며, 이와 더불어 “특수임무수행 중 희생한 사람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선양교육 및 안보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추모공원 조성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아울러 “특수임무유공자 및 유족들을 위한 사업 외에도 특수임무수행자회의 재원조달을 위해 치안 유지 사업과 지역사회의 복지에 공헌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회장 이종열)는 충혼탑에서 제10회 특수임무전사자 합동위령제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각 보훈단체장과 본회 임직원, 회원, 유가족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국가유공자화를 위한 법률개정 추진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는 단체설립 이후, 회원 모두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고 쇄신하는 단체를 만드는 것에 역점을 두고, 전체회원의 국가유공자화를 위한 법률개정을 추진하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현재 상이국가유공자 등급을 받은 특수임무부상자와 등급을 받지 못한 특수임무공로자로 구분되어 실질적인 유공자단체 회원으로써의 제도적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회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는 국가유공자에 대한 심사를 할 때, 군에 있을 때 부상을 당하게 되면 상이군경으로 보상하는데 반해, 특수임무유공자는 부상당해도 과거 근무했던 자료나 근거를 보안자료로 취급해 파기시키거나 관련기관에서 제대로 된 근거자료를 보내주지 않아 더욱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또한 특수임무유공자회에서는 십여 년 간 현충사업단, 추모공원 TF팀 운용, 특수사업단 등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보훈처 및 정부 부처의 무관심과 별도의 지원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을 뿐, 현재까지 각종 민원요구 등을 통해 제기했던 모든 현안이 모두 정체되어 있는 답답한 현실에 처해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오랜 숙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안정된 업무공간이 필요한 시기임에도 회관이 없어 불법점유로 과태료를 추징당하고 있는 현실이며, 전국에 산재한 위패 및 추념행사를 단일화하고 합동위령제를 지낼 수 있는 추모 공간 및 묘역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특수임무유공자회의 그동안의 추모사업으로는 백령도지구 월래도 14위 전사자 추념식(인천 백령도 3월), 특수임무전사자 5333위 추념식(서울 우이동 4월), 특수임무1지대 260위 전공비 추념식(경기파주 5월), 특수임무전사자 합동위령제(성남 판교 6월), 특수임무전사자 현충탑 묘역 합동위령제(강원도 고성 6월), 특수임무수행전사자(해군첩보부대) 추모식(인천 월미도 6월), 영흥도 X-ray작전 14위 전사자 추모식(인천 영흥도 9월) 등을 진행해왔다.

이종열 회장은 “특수임무전사자 7,726위에 대한 위령제가 지역적으로 산재(서울, 경기, 인천, 강원 등)되어 추모하고자 하는 고인들에 대한 중복제사를 지내는 폐단이 있으므로 이제는 추모공원을 건립해 같은 장소에서 일 년에 한 번씩 통합위령제를 지낼 수 있도록 추진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제는 국가를 위해 특별한 희생을 치룬 전사자들의 공헌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할 때로서, 국가와 관계기관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기존의 타 단체들과 비교 시 국가의 수혜 수준에서 형평성과 생존회원 및 유족을 위한 예우 및 추모시설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이어 “우리 단체는 북파공작원 임무를 수행했다는 특성상 독립, 참전, 민주화 유공자로 구성된 타 단체와는 성격이 다르며, 북파공작원은 군인 또는 민간인으로서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그 실체를 인정받지 못한데 대한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현 상황에 대해서 전하며, “법률안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모든 회원이 상이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이를 통해 회원의 복지향상과 위상제고에 확고한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의지를 피력했다.

한편, 국립 4,19민주묘지는 약 3만평 부지에 안장기수 416기, 국립 5,18민주묘지는 약5만평 부지에 안장기수 775기, 국립 3,15 민주묘지는 약4만평 부지에 안장기수 122기로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특수임무유공자 운용인원 1만4천 명 중 7,726여명의 전사했고, 실종자 및 생존회원 3천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시신 없이 위패만 존재한다는 이유로 추모공간의 필요성을 주장할 때마다 국회의 외면을 받아온 현실이라고 전했다. 현재 희생자들을 위해 군부대 소각장으로 사용하던 부지에 급조 건립된, 경기도 판교 정보여단부대 출입구에 있는 충혼탑에서 매년 합동위령제를 거행하고 있으나, 이것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장소로는 매우 부적절한 장소로서 논란이 분분하다.

독도행사 위문품전달

안보활동 및 자원봉사로서 국가발전에 기여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는 매년 국민들에게 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안보의식을 고취시키고자 6.25 관련 행사와 대일본망언 규탄집회, 독도수호를 위한 독도지킴이 행사 등 국가의 안보활동을 전국의 지부와 연합해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것’을 주 포인트로 삼고, 안보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국가안위의 중요성을 몸소 터득할 수 있도록 계도하고 있다. 특히 열악한 재정상태와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모든 회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폭설피해 지역 복구활동, 원유 유출지역 피해복구활동, 태풍 및 수해복구 자원봉사, 실종자수색 및 인양 등, 국가 위기시마다 다양한 봉사활동에 임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수중정화작업 등의 자연정화활동을 정기적으로 펼쳐오고 있는 한편,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 불우 소외계층을 위한 집수리 봉사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종열 회장은 “우리 단체는 명실상부한 애국단체로서 자원봉사뿐만 아니라, 북의 소행을 상기하고 국민의 호국정신을 함양하는 안보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평소에도 특수임무유공자회는 지역 시민들을 위해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 만들기에 앞장서 지역민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렇게 지역 지역사회를 위해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펼쳐온 결과, 지난 2018년 ‘최우수 공법단체’로서 국가보훈처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 회장은 “아직은 열악한 환경이지만 전국적인 조직구성 및 투철한 국가관을 주무기로 국가 재난과 위급 상황이라면,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는 준비된 단체로서 국가발전에 기여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 전하며, “앞으로 봉사활동 범위를 넓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솔선해서 달려가겠다”고 의지를 다짐했다.

끝으로 이종열 회장은 “창립 초기의 열정을 거울삼아 새로운 리더의 모습으로 구성원 각자의 역할을 일깨워 주고 목표를 공유하며 1기, 2기 집행부가 구축한 토대위에 성장과 결실을 맺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히며, 특히 “국가의 안보를 책임졌던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해 그 바탕위에서 지역사회 발전을 꾀하고 회원들 모두 모범이 되어 함께 일구어나가자”고 회원들에게 격려와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도 북한은 신뢰할 수도 없지만 언제 어떤 돌발 상황을 일으킬지 모른다. 우리의 안보의식을 강화하는 한편, 북의 도발에 맞서 적진에 침투해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각오로 싸웠던 특수임무유공자의 수훈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하루빨리 그들의 바람사항인 기반시설과 추모공원이 조성되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의 희생과 애국정신이 후손들에게 영원히 전해질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탈북민 백령도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이종열 회장

- 소속 :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회장

- HID 1975년 1차

- 1975년~1985년까지 10년 동안 공작부서 근무

- 2006년 1975년 1차 통합 기수 대표 역임

- 2006년 단체 통합 선거 관리 위원장 역임

- 2007년 통합 HID 특수임무수행자회 사무총장 역임

- 2007년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설립위원 역임

- 2008년~2011년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 제1기 임원(이사) 역임

- 2013년~2014년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서울특별시 지부장 역임

- 2014년 12월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제3대 회장 당선

- 2015년 1월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제3대 회장 취임

- 2019년 3월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제4대 회장 당선

- 2019년 5월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제4대 회장 취임

이종현 기자  news05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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