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선 홍천문화원장

홍천은 구석기 시대부터 중석기 문화유적지는 물론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찬란한 산촌 문화를 꽃피우며 홍천 문화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고장이다.

홍천문화원(원장 박주선)은 전통문화는 물론 사이버 멀티미디어 시대로 급변하고 있는 오늘날, 어제와 오늘의 참모습을 새롭게 조명하며 산촌문화의 고장이며, 무궁화의 고장인 홍천군을 군민들과 함께하는 문화 공간 및 체험공간으로서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군민과 함께하는 문화원으로 ‘홍천학’의 체계적 연구

“대한민국이 6~7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경제적 풍요로움이 있게 된 것은 80년대부터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국민들의 문화적 욕구도 높아졌는데 저희 홍천만 해도 주민들이 지역 문화를 접하는 자세와 취미활동 등에 있어 매우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는 박주선 홍천문화원장.

홍천문화원은 1976년 5월 홍천문화원 창립총회를 기점으로 제1대 박진영원장이 취임하면서 출범하였다.

1993년에는 문화부에서 시범문화원으로 지정되기도 하였으며, 이후 1994년 지방문화원으로 설립인가와 등기를 하였다. 1998년에는 문화관광부 지정 한국문화학교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올해 1월 취임한 제11대 박주선 원장에 이르고 있다.

박주선 원장은 임기동안 “군민들의 문화생활 향상을 위해 보다 진취적인 방향으로 홍천문화원을 이끌어 갈 것“이라면서 홍천의 독특한 지역문화의 정체성과 특성을 바탕으로 각종 문화사업을 전개할 것이라고 했다, 그 첫 번째로 문화학교 운영을 통해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민의 문화적 욕구충족은 물론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융화와 화합을 지향하는 사회통합 기능을 수행하는 수준 높은 정신문화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칠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홍천문화원에서 운용하고 있는 문화학교에서는 서예, 미술, 악기, 노래교실 등 27개 프로그램을 개설하였으며, 우수한 강사진을 통한 질적인 교육으로 호응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에 많은 지역민들이 참가하면서 누구나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 약 600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연령대는 3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또한 지역의 전통문화와 향토사를 다룬 ‘홍천학’을 만드는데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창조적으로 계발하여 지역 고유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데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홍천지역의 명현, 석학, 충신, 열사의 얼이 스며있는 고장답게 그들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운동을 전개 하고 왜곡되었거나 빠진 역사를 다듬어서 자랑스런 역사로서 후손에 물려준다는 것이다.

한편, 세계의 국제화 시대를 맞아 급변하는 문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문화원을 참신하고 활력이 넘치게 변모시켜 나갈 것이라는데, 이를 위해 지역민 각계각층은 물론, 다문화가정 등을 폭넓게 아우르는 문화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문화선도자로서의 역할을 다 할 것이라고 한다.

홍천이 자랑하는 문화유적과 대표적 역사인물

홍천 문화유산으로는 보물로 지정된 수타사 동종을 들 수 있다. 수타사 동종은 조선 숙종 때 승려 사인비구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전통적인 신라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것으로 그가 만든 문경 김룡사 동종과 함께 종을 치는 부분인 당죄를 독특하게 표현하여 완숙미를 높인 작품이다. 이외에도 희망리 삼층석탑. 희망리 당간지주, 괘석리 사사자삼층석탑, 물걸리 석조여래좌상, 물걸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물걸리 불대좌, 물걸리 불대좌 및 광배, 물걸리 삼층석탑 등의 보물 등이 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수타사 대적광전, 수타사 소조사천완상 수타사 영산회상도, 수타사 지장시왕도가 있다.

또한 강원도 기념물로는 풍암리 동학혁명군 전적지, 물걸리사지, 홍천 동창보수로 및 암각명, 한서 남궁억 묘역 등이 있다. 이밖에도 문화재 자료로 양덕원 삼층석탑, 수타사 삼층석탑, 괘석리 삼층석탑, 진리석불, 김학균 가옥 홍천향교, 등의 유산이 산재되어 있다.

홍천의 관광지로는 홍천9경으로 유명한 팔봉산, 가리산 미약골, 금학산, 가령폭포, 공작산 수타사, 용소계곡, 설둔계곡, 가칠봉, 삼봉약수가 있다. 이중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선정되기도 한 팔봉산은 8개의 봉우리에서 계절마다의 비경과 기암괴석이 산허리를 감싸고 흐르는 홍천강과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공작산도 100대 명산으로 산세가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같다하여 이름 붙여졌다. 천년고찰 수타사가 자리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홍천은 대한민국 대표 건강놀이터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특히 홍천강시대로서 군에서는 관광 휴양의 홍천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평화와 번영의 지속가능한 발전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홍천의 역사인물로는 무용가 최승희가 있다. 최승희는 1911년 홍천에서 출생하여 서울의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7년 일본 이시이바쿠 무용단의 경성공연에 출연하면서 유명해 졌다. 이후 고전무용을 바탕으로 창작무용의 뿌리를 조선춤에 두게되면서 승무, 칼춤, 부채춤, 가면춤 등을 현대화하는데 성공하여 격찬을 받았다.

1946년 평양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하였고,1955년 인민배우가 되었으나 1967년 숙청당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이며 언론인이며 교육자인 한서 남궁억이 있다. 남궁억은 1863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한문을 수학하고, 1886년 내부주사가 되고, 1887년 전권대신 조민희를 수행하여 상하이에 갔다. 1893년 칠곡부사를 역임하고, 1895년 내부 토목국장이 되어 탑골공원을 축조하였다. 그 후 흥화학교 교사로 영어와 국사를 가르치고,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수석총무와 사법위원을 겸임하였다. 1898년 독립협회 관계로 투옥되었다가 풀려나와 ‘황성신문’ 사장이 되어 러시아와 일본의 한국분할설과 러·일협정을 공박하였다. 1905년 성주목사, 이듬해 양양군수로 있으면서 양양에 현산학교를 설립하고 1907년 대한협회장이 되었다. 1918년 강원 홍천(洪川)의 보리울(모곡)에 교회와 학교를 건립, 무궁화 묘포를 조성하였다.

1933년 ‘무궁화와 한국역사사건’으로 체포되어 복역하다가 1935년 병으로 석방된 후 고향에서 별세하였다.

강원 홍천군 서면 모곡리 387번지에 한서 남궁억 기념관이 설립되어 있다.

홍천문화원의 대표적인 행사

홍천문화원에서 주관하고 있는 한서문화제(翰西文化祭)는 무궁화를 후손과 나라 전체에 보급하여 겨레꽃이 되게 한 한서 남궁억의 뜻을 기리고자 열리는 문화예술축제이다. 홍천지역에서 활동한 남궁억은 무궁화 사랑 운동을 펼쳐 무궁화가 겨레꽃이 되게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는데 이러한 정신을 군민정신으로 승화시키고, 군민 화합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1977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한서문화제위원회가 주최하고 홍천문화원, 홍천군체육회, 한국예총 홍천군지부가 주관하는 민속행사로 민속경연, 줄다리기, 씨름, 그네, 족구가 열리고, 문화예술행사로 종합예술제, 무궁화학생사진전, 무궁화분재 및 야생화 전시회, 전국 사진공모전, 무궁화그림 전시회, 군민노래자랑, 전국 한시백일장, 전국청소년무궁화대전, 무궁화사랑 강연회, 외국인 주부 바자회, 도자기 물레 시연, 전통체험 마당, 사진촬영 시연 등이 펼쳐지며, 체육행사로 축구, 테니스, 궁도대회, 게이트볼, 육상, 족구가 열린다.

그 외 컴퓨터 종합활용능력대회, 아마추어 무선 햄(HAM) 공개운영, 무료영화 상영, 풍물 야시장, 농·특산물 판매장, 건강카페가 운영되고, 고적대 퍼레이드, 태권도 시범 등이 축제 기간 동안 펼쳐진다.

이밖에도 홍천문화원이 주관하는 행사로 매년 5월이면 열리는 쥴 쟝루이 소령 추념식이 있다. 홍천군 두촌면 장남리 44번 국도변에 있는 쥴 쟝루이 공원은 1950년 한국전쟁 때 프랑스군 의무대장으로 참전해 두촌면 장남리 골짜기에서 구급활동 중 지뢰를 밟고 산화한 쥴 쟝루이 소령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1950년 11월 26일 참전한 쥴 쟝루이 소령은 원주전투 등 5개 지역 전투에 이동병원의 의무대장으로 참가, 부상병 치료는 물론 활발한 대민진료 활동을 펼쳤다. 특히 51년 두촌면 자은3리 속칭 외후동에 주둔하면서 주민들의 질병 치료에 적극 나서는 등 숭고한 인도주의 정신을 보였다.

그러나 쥴 쟝루이 소령은 그해 5월 8일 두촌면 장남리에서 지뢰를 밟은 국군 2명을 치료한 후 본인도 중공군이 매설한 지뢰를 밟아 34세의 꽃다운 나이로 이국땅에서 숨졌다. 홍천군은 지난 86년 한ㆍ불 수교 100주년 및 쥴 쟝루이 산화 제35주기를 기념해 전사지인 두촌면 장남리에 동상을 건립하고, 공원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2009년에는 쥴 쟝루이 소령의 고향인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싸나리시와 양 도시의 교류 활성화를 위한 자매결연을 맺었다. 올해도 지난 5월7일 쥴 쟝루이 공원에서 추념식이 거행되었다.

한편 홍천은 조선 말기 동학혁명군이 관군과 싸웠던 전적지이다. 동학혁명은 고종 31년(1894) 교조신원운동의 실패와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이 원인이 되어 부당한 처사를 호소한 농민들의 요구가 묵살되자 분노한 동학접주인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보국안민의 기치를 내걸고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이때 홍천지방에서도 농민항쟁이 크게 일어났는데 동학군의 일부가 홍천관아를 공격하고자 산에서 내려와 홍천읍 장야촌 지역까지 진군했을 때, 당시 홍천지방의 관군 총사령관 맹영재와 접전하여 속초리에서 동학군 30여 명이 전사했다.

장야촌에서 패전한 동학농민군이 서석면 풍암리로 퇴각 집결하여 김숙현을 중심으로 수천 명의 동학군이 최후의 항전지인 이곳 자작고개에서 관군과 치열한 접전 끝에 패퇴하게 되어 동학혁명은 실패하고 말았다.1976년 자작고개에서 새마을 사업을 하던 지역주민들이 유해더미를 발견했는데, 당시의 사상자가 약 800여 명이 될 것이라 추정하지만 대부분의 전사자와 부상자를 구덩이에 쓸어 묻었다고 하니 그 수는 부지기수이다.

1977년 홍천군에서 풍암리 동학혁명군 전적비를 건립하였으며 현재 풍암리에서는 30여 호가 음력 10월 22일에 기제사를 올리고 있다. 홍천문화원에서는 매년 기일을 맞아 위령제를 거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정월 대보름 행사와 단오 행사는 지역 주민과 함께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로서 진행하며, 강원학생종합예능대회 및 학생 그리기 글짓기 행사도 매년 개최되고 있다. 이 행사는 학생들의 창작예술 표현을 통한 자질향상 등 창의적인 소질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는데 참가자들은 백일장, 사생, 서예 등 부분별로 기량을 겨루게 된다. 특히 10월에는 한국예총 홍천지회와 함께 문화예술 발전의 기반구축 및 창작활동의 저변확대를 통한 시민의 화합계기를 마련하는 행사도 열리고 있다,

시민과 함께하는 홍천문화원 박주선 원장

박주선 원장(77세)은 홍천군 화촌면 외삼포리에서 나고 자랐다. 화촌중학교와 홍천농업고등학교를 나와 강원대행정학과를 졸업하였다. 66년 양구군청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으로 90년 홍천읍 부읍장에 이어 홍천군 문화공보실장, 홍천군 의회 사무과장, 군 내무과장, 자치행정과장 등 군의 주요 요직을 거치게 된다.

이후 2000년 홍천군 기획감사실장을 마지막으로 명예퇴직 했다. 퇴임하는 해, 제5대 도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6대까지 도의원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평생을 공직에 몸담았던 박주선 원장의 좌우명은 ‘건강하게 슬기롭게 살자“이다. 뭔가 거창한 게 나오지 않을까 내심 생각했는데 의외로 단순 명료했다.

그러나 건강한 육체와 정신에서 올곧은 생각이 나오며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 결국 인생을 슬기롭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발자취가 후대에 이정표가 되는 것처럼 지역에서는 덕망 받고 가정에서는 존경받는 이 시대의 지성인이라고 할 것이다. 이건주(73세)여사와의 슬하에 남매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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