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천년고찰 청련사 이사장 상진스님

팽배한 물질자본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 갖가지 망상과 편견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아귀다툼과 끝도 모를 무한경쟁, 무질서한 혼돈에 둘러싸인 지금, 삶은 한없이 고단하고 행복은 멀어져 보인다. 이렇게 혼란한 시대, 지구의 생존 자체는 불교를 통한 인간의 정신혁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현 상황을 일찍이 깨달았던 붓다는, 인간의 현실을 ‘일체개고(一切皆苦)’라고 표현했다.

일체개고란 사람이 무상(無常)함과 무아(無我)를 깨닫지 못하고, 집착하여 온갖 고통에 빠져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화가 절실한 이때, 부처님 같이 청정하고 맑아서 천상의 음성이라고도 하는 범음범패(梵音梵唄)로, 중생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재단법인 천년고찰 청련사 이사장 상진스님을 만나 소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편, 상진스님은 철화스님을 은사로 출가, 1991년 사미계, 2011년 구족계, 경기북부교구 종무국장, 동방대학원대학교 교수, 총무원 문화부장, 중앙종회 사무처장, 청련사 안정불교대학 강주, 광덕사 주지, 청련사 총무·교무를 두루 역임했으며, 현재 재단법인 천년고찰 청련사 이사장을 맡고 있다.

천년 동안 지켜온 소중한 불교문화유산

천년고찰 청련사는 빼어난 풍광을 지닌 양주시 개명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차분하게 정돈된 경내에 들어가, 가만히 주변 풍경을 바라보면 심연을 일깨우는 대자연의 소리에 삼라만상을 모두 생각하게 된다. 특히 이 사찰은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현대미와 편안한 전통이 어우러진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으며, 대웅전, 대적광전, 원통보전, 명부전, 귀적당, 삼성각, 만불전, 윤장대, 종각, 안정불교대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련사는 신라 흥덕왕 때, 서울 왕십리 종남산 무학봉 자락에 안정사(安靜寺 혹은 安定寺)라는 사찰 명으로 창건됐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가 주석하였으며, 조선의 새로운 도읍을 정해 달라는 태조의 부탁을 받은 무학대사가 7일 동안 등불을 밝히고 대웅전에서 기도를 모신 후, 관음보살님의 화현신을 접하고 지금의 경북궁 터를 선정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는 영험의 도량이기도 하다.

그리고 회향 시 뒤뜰에 핀 연꽃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린 것을 보고 청련사(靑蓮寺)라 개명했다는 사찰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덕망이 높은 스님들의 원력으로 중수되었으며, 수년간 길지(吉地)를 물색하던 끝에 지난 2009년 사찰을 양주시 장흥면으로 옮겨 복원, 지금에 이르고 있다. 특히 청련사는 관세음보살 기도도량으로 많은 신자들이 찾아와 불공을 드리는 자비 나눔 실천도량으로 그 역할을 다해오고 있다. 또한 선·조사 스님들로부터 보존되어온 불상과 불화 등 문화재 보존에 앞장서오며 천년의 세월을 지켜온 도량인 청련사가 갖고 있는 역사성은 불교사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매우 중요하다.

왕십리에서 양주로 청련사를 이건할 때 기존의 대웅전 건물 자재를 그대로 옮겨와 원통보전을 건립했고, 불상과 불화도 원형 그대로 전각에 안치했으며, 조선시대에 조성된 아미타삼존상과 원통보전의 관세음보살상 그리고 조선 후기에 조성된 불화 등 총 13점의 불교문화유산에 대한 무형문화재 등록신청을 마쳤으며 전통의례와 범음범패, 장엄, 불화, 피리, 호적 등의 무형문화재 등록을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을 지니고 있는 청련사의 역사적 변천은 과거 선학들이 피땀으로 이루고 이어져 내려온 소중한 불교문화유산의 하나로, 청련사가 갖고 있는 역사성과 전통성은 모든 종단을 넘어 한국 불교사적 관점에서도 중요한 자산이다. 이렇게 천년의 세월을 거쳐 발전과 퇴락을 거듭해온 청련사가 다시금 발전의 기틀을 다져 나가고 있는 힘은, 백우 대종사 스님의 공덕에 의해서이다. 백우스님은 선인들의 입김이 서려있는 역사적 배경을 살핌으로서, 2009년 지금의 양주시로 이전해 청련사는 재창건 된다.

상진스님은 “천년을 지켜온 자리를 뒤로하고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기 위해, 2007년 입적하신 백우 대종사 스님께서는 7번 중·창건을 거친 청련사를 지금의 터에서 새롭게 대작불사를 시작 하셨다.”면서, “자칫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일을 가능케 한 것은, 과거 전생부터 쌓인 백우스님의 공덕의 결실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청련사에서는 창건 1191년을 맞이해 그 의미를 기념하고자, 지난 4월 대적광전에서 ‘천년고찰 청련사의 역사와 문화’라는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날 학술세미나에서는 청련사의 창건과 중창 과정부터 불상과 불화 그리고 상진스님의 범음범패 등을 연구한 주제로 논문들이 발표됐으며, 과거 선·조사스님이 일궈낸 전통적 가치관을 오늘에 맞게 재해석했다는데 그 의미가 남다르다.

상진스님은 학술세미나 총평을 통해 “일제강점기 이래, 한 번도 정리된 적이 없던 청련사의 역사와 유·무형문화재를 분석해 정리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앞으로 청련사의 유·무형문화재가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돼 불교 전통의식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2017 캄보디아 영산대재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범음범패

신라말기 고승인 진감국사(眞鑑國師)에 의해서 크게 선양되었다고 전해지는 범음범패(梵音梵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찬탄하고 그 공덕을 마음에 새김으로서 인간의 심성을 함양하는 영성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심오한 예술성으로 인해 한국전통음악사에서는 가곡, 판소리와 함께 대한민국의 3대 성악(聲樂)으로 평가되는 한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2009년 9월 30일, 중요무형문화재 50호 영산재)되어, 한국을 넘어 지구촌의 정신문화유산으로 그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범음범패는 기본을 배우는데 만해도 최소 수 십 년이 걸리는 고행의 불교예술로서, 예부터 악보도, 계명도 없이 오롯이 구전되어 내려온 한국고유의 불교음악이다. 특히 범음범패는 스승과 제자 간에 구전 전승되면서, 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종교적 사명의식 속에만 전수해 왔기에 민간의 소리에 비해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이러한 범음범패로서 부처님의 청정한 음성을 중생들에게 전하고자 열정을 다하고 있는 상진스님은, 범음범패를 통해 불교의 가르침을 전해오며 불교계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예술사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관련 음악전문가의 평가에 의하면, “기초 염불, 짓소리, 법기 타주, 북 가락, 호적 가락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기량을 장엄염불에 투여해 맑고 청량한 소리로서 종교적인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 이 범패를 가장 정확하게 듣고 볼 수 있는 의식이 바로 영산대재로서, 한국불교유산 중 가장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영산재는 범패로 시작해서 범패로 마감을 한다.

이는 속되지 않고 마음 속 번뇌를 다 씻기는 듯 청량한 소리로 부처님께 바치는 소리 공양”이라고 전했다. 한편 영산재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고 영취산에 법화경을 설할 당시의 모습을 오늘날 다시 재현한 의식으로서, 재를 베풀어 망자로 하여금 해탈과 극락왕생을, 살아있는 대중에게는 불법의 가르침과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한편, 부처님 당시의 영산회상을 도량에 다시금 꾸며,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불교와의 인연을 짓고, 깨우침을 주는데 영산재 목적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서 상진스님은 맑고 향기로운 소리, 부처님의 음성인 범음범패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과 인연을 맺게 하고 있으며, 신심을 더욱 증장시키고 있다. 평소 우리나라 불교의식에 빠짐없이 독송되고 있는 천수경을 들으며 수련을 해왔다는 상진스님은, 월봉스님과 같이 염불을 잘 하는 스님이 되고자 지난 1992년 동방불교대학 범음범패학과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범음범패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범음범패가 활성화되어 있어 부처님의 맑은 음성을 중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일본 동산정원(東山淨苑) 방문

전통문화계승과 인재육성을 위한 발원으로 후학 양성에 힘쓴다

범음범패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한 범음범패승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지난 20여 년간 강단에 서서 출가자와 재가자를 불문하고 학인들에게 범패를 가르치고 있는 상진스님은, “범음범패는 세계 어느 불교국가에서도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나라만의 불교전통의식으로서, 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말하며, 또한 “범음범패는 스님들의 종교적 사명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써 포교불사의 원력을 세우는 큰 힘이 되고 있다”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이어, “악보가 없이 구전되는 것이기에 그 소리가 수 십 년 동안 뼈에 박히도록 부단히 새겨야만 원형의 음률과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서, 그렇기에 “범패승은 가사가 되는 경문(經文)을 익숙히 외워야하고, 자세 또한 흐트러짐이 없어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범음범패의 예사롭지 않음을 전했다.

그래서 범음범패를 배우려는 이도 드물지만 배우고 싶어도 정통 그대로 가르치는 곳이 제대로 없어서 배우기가 힘들다.

상진스님은 전통문화계승과 인재육성을 위한 발원으로 지난 1991년부터 범음범패 교육을 전담하고 있으며, 지난 20년간 강단에서 수많은 학인 스님들에게 변질되지 않은 맑고 순수한 전통의 소리 그대로인 범음범패를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불교대학의 수강생 중, 지금까지 80여 명의 출가사문 상좌가 있었으며, 전체 1000명이 넘는 교육 이수자를 양성했다.

2018년도 4월에는 중앙승가대학에서 불교의식 특강도 진행하는 등, 종단을 초월해 보다 많은 이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노력 중이다. 따라서 범음범패의 전통이 사라질까 염려돼, 어떻게든 그 명맥을 잇고 우리의 전통음악인 범음범패를 계승해 나가야겠다는 의지를 지닌 상진스님의 가르침은 그 가치가 더욱 돋보인다. “향후 부처님 사상을 정법으로 홍포할 수 있는 불교교육과 한국의 전통적인 국악예술대학을 만들고 싶은 것이 제 바람”이라며, “다양한 커리큘럼을 갖춘 정규 불교대학으로 국가에서 인정받는 대학으로 성장시켜 나가고 싶다”고 상진스님은 미래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템플스테이를 상시 운영하여 대중들에게 산사체험의 기회와 한국불교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는데도 이바지하고 있다. “불우이웃 및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위한 사랑 나눔에도 적극 동참해 소외된 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하는 상진스님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자비와 지혜로 청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2018 캄보디아 영산재에서 이사장 상진스님과 캄보디아 국회의원

끝으로 “한 마음이 청정하면 모든 마음이 청정하고, 모든 마음이 청정하면 온 세상이 청정하다. 인과법을 알고 부처님 마음처럼 청정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이 부처님의 참 제자”라고 맑은 자비의 가르침으로 당부했다. 지혜와 자비로 가득한 상진스님이 설파했듯이 복지사각지대에서는 따뜻한 밥 한 그릇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남을 돕겠다”고 한다. 하지만, 분수에 맞는 삶을 살며 남을 위하는 작은 선행, 일상생활로 젖어드는 보시행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지름길이다.

찻잔의 차가 식는 줄도 모르고 상진스님과의 담소는 이어졌다. 음성공양을 통해 부처님께 서원을 올리고자 했던 조상의 얼과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상진스님의 원력 때문일까, 스님의 모습이 더욱 밝고 빛나 보였다. 연꽃 같이 맑고 향기로운 천상의 소리 범음범패를 통해, 부처님과 같은 맑은 음성으로 중생들에게 설법을 전파하고 있는 청련사 상진스님의 자비심 가득한 훈향이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밑거름이 되길 기대해본다.

청련사 호국삼층보탑
저작권자 © 뉴스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