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무형문화재 제2호

사단법인 국가무형문화재 제2호 양주별산대놀이보존회 보존회장 이해윤

양주별산대놀이는 서울중심의 경기지방에서 연희되어 온 산대도감극의 한 분파로서, 본산대라고 하는 녹번, 아현 등지의 것과 대동소이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이 산대놀이는 중국 사신을 영접할 때도 연희됐으며, 나례도감 후에 산대도감에서 관장한 궁중행사에도 동원됐다.

양주별산대놀이는 4월 초파일, 5월 단오, 7월 백중, 8월 추석에 주고 연희되고 기타 대소 명절 외 가뭄때의 기우제에도 연희되었으며, 한번 시작된 연희는 밤 10시를 넘어 심지어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으나 형편에 따라 3~4시간으로 줄일 수도 있었다. 이런 놀이를 약 250여 년 전부터 해마다 한양 딱딱이패(백정, 상두꾼, 건달로 구성되었다 함)들을 초청하여 산대놀이를 놀게 했는데, 그들은 지방공연 관계로 약속을 어기는 일이 많아지자, 이에 불편을 느낀 양주골에서 신명이 과한 자들이 딱딱이패를 본떠 탈을 만들고 연희를 시작하면서 계승되어 내려온 것이 양주별산대이며, 당시의 중요인물은 이을축으로, 양주 최초의 탈 제작자라고도 한다. 놀이는 길놀이로 시작되는데, 양주별산대기와 영기를 앞세우고 연희자들이 풍물을 울리며 마을을 돈다. 낮 동안은 주로 부유한 집에 들러 춤과 덕담을 베풀어 홍을 돋우다가 밤에 탈놀이가 시작되기 이전에 <탈고사>를 지내는 것이 상례로 되어있다.

격식대로 하면, 놀이전의 고사에서 떡과 3색 과일 외에 소머리, 돼지다리 등 푸짐한 제물이 올라야 하고 그 제물과 제주를 음복하여 취기가 돌아야 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양주별산대놀이는 다른 한국가면극과 마찬가지로 음악반주에 춤이 주가 되고, 노래가 따르는 가무적 부분과 거기에 묵극적인 몸짓과 덕담, 재담이라고 하는 사설, 즉 대사가 따르는 연극적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상좌, 연잎과 눈끔적이, 애사당, 소무, 노장, 원숭이, 해산모, 포도부장, 미얄할미 역들은 대사가 없이 춤과 몸짓, 동작만으로 연기하지만 그 외의 역들은 대사와 춤과 몸짓, 동작으로 연기한다. 그 대사들은 평범한 일상 회화식이며, 말없는 탈의 연기에서는 노장의 팬터마임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시종 대사 한 마디 없이 춤과 몸짓으로만 소무와의 파계과정과 농희를 훌륭히 한 과장으로 성립시키고 있다. 춤사위는 어느 탈춤보다 다양하여, 한국 민속무의 기본을 찾을 수 있으며, 가면은 보다 사실적으로 등장하는 배역이 총 32명이나 겸용하는 가면이 있기 때문에 실제 사용한 가면수는 22개 내외가 된다.

그 내용은 크게 8과장 8경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과장별로 보면 길놀이, 고사, 제1과장 상좌춤, 제2과장 옴중과 상좌, 제3과장 옴중과 먹중, 제4과장 연잎과 눈끔적이, 제5과장 팔먹중(제1경 염불놀이, 제2경 침놀이, 제3경 애사당 법고놀이), 제6과장 노장(제1경 파계승놀이, 제2경 신장수놀이, 제3경 취발이놀이), 제7과장 샌님(제1경 의막사령놀이, 제2경 포도부장놀이), 제8과장 신할아비와 미얄할미로, 내용은 산대도감극과 공통내용이며, 조선시대 서민문화의 특성과 마찬가지로 파계승, 몰락한 양반, 사당, 무당, 기타 하인 및 늙고 젊은 서민들의 등장을 통해 현실 폭로, 풍자, 호색, 웃음과 탄식을 보여주며, 주제로는 ①벽사의 의식무와 굿, ②파계승에 대한 풍자, ③양반에 대한 모욕, ④남녀의 대립과 갈등, ⑤서민생활의 실상 등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당시의 특권계급과 형식, 도덕에 대한 일종의 반항정신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서민생활을 연출하는 서민극으로,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전수되고 있다. 

(자료제공 양주별산대보존회)

2과장 옴중과 상좌

길놀이

양주별산대놀이 공연을 위해 전수회관에서 가면과 의상을 갖춰 입고 꽹과리, 징, 제금, 장구, 북, 호적 등의 풍물을 울리며, 동네를 돌아다니며 공연장소까지 행렬하는 것을 길놀이라고 한다. 행렬 선두에는 먹중 두 명이 영기를 하나씩 들고 뒤로는 옴중이 양주별산대기를 들고 따르며, 그 뒤에 풍물잽이들이 풍물을 치고, 연희자들이 춤을 추며 공연장소에 도착하여 한바탕 신나게 놀고 탈을 벗어 고사상 앞에 배열해 놓고, 고사에 참여한다.

 

서막고사

놀이를 시작하기에 앞서 가면을 배열하고, 그 앞에 고사상을 마련하고 연희자중에서 제관과 집사가 나와 고사를 지낸다. 22개 내외의 가면을 순서대로 배열하되, 그 중 “신할아비”와 “미얄할미” 탈을 연장자 탈이라 하여 제일 윗자리에 놓고 연잎과 눈꿈적이 그리고 노장 등의 순으로 배열한다. 제물은 소머리, 편, 누름적, 배, 사과 등을 놓고, 집사가 고사문을 낭독하고, 한지를 태우며 탈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 신령과 고인이 되신 연희자들의 영혼에게 공연하는 동안 연희자들과 관객들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제1과장 상좌춤

상좌춤은 8~9세된 어린 중이 연희자와 관객들의 무사함을 기원하고 잡귀를 물리치며 사방신께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무이다. 상좌춤은 상당한 경지에 오른 연희자가 추는 춤으로서 웬만큼 추어서는 그 춤의 멋과 맛을 제대로 나타랠 수 없으며 양주별산대놀이의 춤사위를 고루 갖추고 있다.

5과장3경 애사당법고놀이

제2과장 옴중춤

옴중춤은 양주별산대놀이를 대표하는 춤중의 하나이며 거드름춤과 깨끼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옴중의 물건을 상좌가 빼앗고 옴중을 놀리며 장난을 치다가 옴중이 상좌를 때려 내쫓고 타령장단에 맞추어 깨끼춤을 추고 퇴장한다.

 

제3과장 옴중과 먹중

양주별산대놀이를 대표하는 옴중의 거드름춤과 먹중의 깨끼춤이 일품이다. 옴중과 먹중이 재담을 주고 받으며 연희를 하는데 이는 특권계층의 권력남발을 풍자한다.

서민들의 진정한 자유정신을 나타내는 과장이며 권력의 시녀인 옴중을 때려 퇴장 시키고 먹중은 타령 장단에 맞추어 깨끼춤을 추며 퇴장한다

 

제4과장 연잎과 눈끔적이

연잎은 하늘의 기운을 다스리는(천상살) 도가 높은 고승으로서 생명체가 눈에 비치면 모두 죽기 때문에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나와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춤춘다. 눈끔적이는 땅의 기운을 다스리며(지상살) 연잎을 보필하는 사람으로서 춤을 출 때 잡귀가 범치 못하도록 한다. 이는 박애정신을 나타낸다.

 

제5과장 1경 염불놀이

염불놀이 과장은 당시 타락한 종교문화를 빗대어 중 행세를 하는 완보와 먹중들이 등장하여 재담, 염불, 가사, 소리 등을 한다. 타락한 파계승의 모습을 풍자하며 소리조로 덕담을 한다.

양주별산대놀이

제5과장 2경 침놀이

침놀이 과장은 당시 사회의 어려운 먹거리 문화의 한 단면과 서민생활의 애환이 진솔하게 담겨져 있다. 아버지역의 말뚝이가 아들, 손자, 증손자들과 함께 술과 음식을 함부로 먹고 죽게 되자 친구인 완보에게 살려달라고 한다.

완보가 신주부를 불러 침을 놓자 모두 살아나서 춤을 추며 나간다.

 

제5과장 3경 애사당 법고 놀이

서민생활의 애환과 인신매매 등 당시 사회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연희로서 왜장녀의 배꼽춤 속에는 인생의 희노애락이 담겨있다. 애사당춤과 말뚝이, 완보가 북을 치며 재담을 하는 것이 이 과장의 백미이다.

사당이란 것이 본시 노래와 춤을 팔며 다니는 전문연예집단의 여자들을 말하는데 애사당이란 어린 사당을 말한다. 말뚝이가 왜장녀를 불러 딸을 팔라고 하자 왜장녀는 돈 욕심에 딸인 애사당을 말뚝이에게 팔아넘긴다. 애사당의 춤이 끝나갈 무렵 말뚝이가 애사당의 북채를 빼앗고 완보는 법고를 빼앗는다. 이때부터 완보와 말뚝이 둘 사이에 법고를 둘러싼 재담이 이어진다.

서막고사

제6과장 1경 파계승 놀이

도를 통달한 늙은 중(노장)이 속세에 내려와 미와 색에 빠져 파계를 하는 내용으로, 노장의 춤은 대사 없이 동작으로만 진행되는데 양주별산대놀이의 모든 춤이 들어가 있으며 농탕질로 파계하는 과장이다. 못된 팔먹중들이 도가 높은 노장을 데리고 온갖 수작을 부린 후 노장을 소무에게로 끌고 가 파계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다.

노장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며 당황한 척 부채를 털어버리기도 하며 번뇌한다. 그러나 노장은 유혹에 못 이기고, 두 명의 소무를 갖은 춤으로 유혹하고, 긴 염주를 두 소무의 목에 걸고, 아랫배를 쭉 내밀며, 부채를 흔들어대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고래당 같은 기와집으로 들어간다.

 

제6과장 2경 신장수놀이

신발장수인 신장수가 노장에게 신발을 팔고 신발값을 받으려 하나 노장에게 우롱당하고 외상을 지운다. 이에 화가 난 신장수는 원숭이를 이용하여 신발을 팔 때 슬며시 보았던 소무를 후리려 원숭이에게 소무 후리는 방법을 가르쳐서 소무에게 보낸다. 하지만 원숭이가 소무를 희롱한 뒤 그냥 오자 화가 난 신장수가 원숭이를 때려 쫓아낸다.

이 과장은 남방계 동물인 원숭이가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제6과장 3경 취발이 놀이

절간에 불목한으로 있는 한량 취발이가 속세에 내려와 여자를 두 명이나 데리고 갖은 농탕질을 하는 노장을 꾸짖으며 싸움을 하고 소무를 빼앗아 시조, 타령, 거드름춤, 깨끼춤으로 소무를 꼬드겨 아이를 낳는다.

이 과장은 양주별산대놀이의 모든 춤과 시조, 타령 등이 총망라된 수준 높은 과장이며 대사가 걸쭉하여 여자들이 회피하였다고 한다.

 

제7과장 1경 의막사령 놀이

말뚝이가 샌님 일행을 모시고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치르러가는 길에 양주골에서 해지는 줄 모르고 산대놀이 구경에 빠진다. 날이 저물어 거처를 정하라는 샌님의 명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 친구 쇠뚝이와 함께 샌님 일행을 돼지 취급하며 온갖 모욕을 주며 농락한다. 당시 계급사회에 대한 불만과 인간의 평등한 삶을 갈구하는 연희과장이다.

제7과장 2경 포도부장 놀이

늙은 언청이 양반 샌님이 소첩을 데리고 사는데 포도부장인 관리가 월장을 하여 소첩과 눈이 맞는다. 이를 안 샌님이 소첩을 달래고 불안한 마음에 포도부장을 찾아가 꾸짖고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을 다짐 받는다. 재차 포도부장과 소첩이 놀아나자 포도부장을 찾아가 호되게 나무라지만 포도부장이 권력을 이용하여 소첩을 빼앗는다.

이 과장은 당시 타락한 권력의 한 부분을 풍자한 서민의 연희이다.

제8과장 신할아비와 미얄할미

이 과장은 서민생활의 고통과 당시 사회의 어려움이 대사와 연희에 그대로 배어나는 마음 아픈 연희로 남녀의 대립과 갈등 및 서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과장이다.

신할아비와 미얄할미가 산대구경을 왔다가 함께 이별가를 부르고 다투다가 영감이 미얄을 향하여 죽으라고 닦달하자 자기성화에 못 이겨 미얄이 죽는다.

신할아비는 평소 찾아도 거의 만날 수 없는 시집간 친누나까지도 성적으로 치근덕거리는 천하 불한당 개코같은 아들 도끼를 불러 누이에게 부음을 전하게 한다.

도끼누이(무당)는 미얄의 죽음을 애도하며 넋을 위로하기 위한 지노귀굿을 하면서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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