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A회사의 창고에서 큰 불이 발생하였습니다. 불은 삽시간에 주변으로 퍼져나갔고 결국 A회사의 인근에 있던 B공장에까지 옮겨 붙어 B공장이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B공장은 화재로 인하여 약 6억 6000만의 손해를 입게 되었으나, 다행히도 미리 화재보험에 가입한 상태였기 때문에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B공장에 지급된 보험금은 3억 2000만원에 불과하여 B공장이 입은 손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B공장은 A사에게 나머지 손해 3억 4000만원을 전부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습니다.

B공장은 A사로부터 자신이 입은 손해를 모두 배상 받을 수 있을까요?

위 사안의 1심 법원은 불이 A회사 창고에서 발생했다는 점에 대하여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B공장에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B공장은 이에 대하여 항소하였고, 다행히 항소심에서는 A사가 B공장에 대하여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점은 인정되었으나, A사가 책임져야 하는 손해배상액의 범위가 얼마인지가 새로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항소심법원은 “화재에 대하여 A사의 과실이 크지 않고, B공장 구조 역시 화재에 취약한 부분이 있다”는 이유로 A사의 책임을 60%로 한정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항소심법원은 B사의 손해배상책임액이 전체 손해액 6억 6000만원의 60%인 3억 9000만원이라고 하면서, 다만 B공장은 손해보험사로부터 3억 2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받았으므로 A사는 B공장에게 이를 공제한 7000만원(3억 9000만원 – 3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항소심법원의 위와 같은 판결은 A사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B공장이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일부 지급받았으므로 지급받은 보험금은 A사의 책임범위에서 공제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언뜻 보기에 매우 불합리해 보이는 판결이지만 항소심법원의 이러한 판단은 기존 대법원 판례의 취지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으로서, 그 동안 우리 대법원은 피해자가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지급받은 경우, 가해자가 배상해야 할 금액에서 피해자가 보험사로부터 지급받은 보험금을 공제하여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려왔습니다(대법원 2009. 4. 9. 선고 2008다27721 판결). 이는 자신의 과실분에 대하여는 배상을 받지 못하도록 한 취지였으나, B공장은 항소심법원의 위와 같은 판결에 도무지 승복할 수 없었고, 이에 대법원에 다시 상고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손해보험의 보험사고에 관하여 피해자가 보험사로부터 수령한 보험금은 피해자가 스스로 보험사고의 발생에 대비하여 그때까지 보험자에게 납입한 보험료의 대가적 성질을 지니는 것으로서 제3자의 손해배상책임과는 별개의 것이므로 이를 그의 손해배상책임액에서 공제할 것이 아니다. 따라서 B공장이 보험사로부터 수령한 손해보험금을 공제하여 A사의 손해배상액을 산정한 원심판결은 잘못되었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그러면서 “A사의 책임이 60%로서 그 액수는 3억 9000만원이고, B공장이 수령한 보험금을 제외하면 남아있는 피해액이 3억 4000만원이므로, A사는 B공장에게 손해배상으로 3억 4000만원을 모두 지급할 의무가 있다”라고 결론내렸습니다. 이와 더불어 대법원은 “기존 손해배상책임에서 피해자가 수령한 보험금을 공제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한 대법원 판결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하기로 한다”고 밝혔습니다(대법원 2015. 1. 22. 선고 2014다46211 전원합의체 판결).

위 판결은 기존에 손해배상책임액에서 피해자가 수령한 보험금을 공제하여야 한다는 판례를 뒤집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서, 이로 인하여 B공장은 A사로부터 자신이 입은 모든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었습니다. 변경 전 판례에 의하면, 피해자는 별도로 보험에 가입하였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과실분에 대해서는 손해를 회복할 수 없는데 반하여, 위 전원합의체 판결에 의하면, 피해자가 자기의 과실분을 포함하여 손해의 전부를 회복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는 피보험자의 이익을 더욱 보호하는 방향으로 판례가 변경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판결이라고 하겠습니다.

법무법인(유한) 김규호 변호사
저작권자 © 뉴스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