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이천시 자전거연맹 회장배 MTB대회

전국 최우수 축제로 그 명성이 자자한 이천쌀축제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 축제 이벤트중 하나로 MTB 대회가 개최되었다.

하늘빛이 유난히 푸르른 일요일 아침, 이천시 각 자전거 동호회 회원 및 일반 참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8시를 전후해서 여성들을 포함하여 200여 건각들이 모여들었다. 간단한 식전행사를 마치고, 출발신호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달려나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면서 기량을 뽐내며 가을 한가운데를 달리는 행렬은 생동감이 넘치고 멋스럽고 아름다운 행사였다.

이번 행사를 주최하기 위하여 각 자전거 동호인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7~8개 동호회를 통털어 이천시 자전거 연맹을 결성하고 초대회장 최갑수씨를 추대하고 제1회 MTB 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백사면 체육공원을 출발하여 신둔면 체육공원까지 18km를 달리는 경기였다.

자전거 경기중에는 “도로 자전거 경기”, “사이클 크로스 산악자전거 경기”. “BMX”, “자전거 트라이얼”, “스피트웨이” 경기 등 여러 가지가 있고, 트렉경기는 올림픽 종목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지 2년 뒤 1791년 콩트메데드시브락(Conte Mede de sivrac)이 목마를 타고 파리의 팔레 루이얄 정원에 나타났다.

이 목마는 나무바퀴 두 개를 목재로 연결하고 그 위에 사람이 올라서서 두발로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장난감과 비슷한 것이었다.

시브락의 이 기계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곧 파리의 명물이 되었고 이것이 역사상 가장 먼저 등장한 자전거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자전거의 기원에 대하여 논란이 있기는 하나 19세기 역사가들은 시브락의 목마가 최초의 자전가라고 기록하고 있다.

시브락이 만든 이 기계는 “셀레리 페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는 빨리 달리는 기계라는 뜻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목마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셀레리 페르는 말, 사자, 인어 등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만들어 외형이 아름다웠으나 방향을 전환 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서 아주 불편했다.

실용적인 탈것이라기 보다는 귀족들이나 젊은이들의 놀이기구에 불과했다.

팔레루이얄 정원은 이 기구를 타는 클럽까지 생겨날 정도였으며,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는 셀러리페르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시부락 이전에도 있었던 어린이들의 장난감일 가능성도 높다.

드라이 지네의 등장 -

19세기초 독일의 카를폰 드라이 남작(Baron Karvon Drais)에 의해 새로운 탈것이 등장하게 되는데 오늘날 자전거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드라이스 남작은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임학, 수학, 물리학 등을 공부하고 후에 독일제국의 일부가 된 바덴 대공국의 산림청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광활한 산림을 시찰하느라 숲과 언덕을 힘들게 돌아다녔는데 타고다닐 교통수단이 필요함을 느낀 드라이스는 1813년 사람의 힘으로 가는 수동식 탈것을 만들었다.

그러나 처음엔 실패도 했으나 포기하지 않고 1817년에 빨리 걷는 기계를 만들었다.

이 기계는 마차 바퀴를 작게 만들어 목재로 연결하고 그위에 올라서서 땅을 번갈아 차면서 앞으로 나가도록 만들었다.

프랑스의 셀레리 파크와 다른점은 앞바퀴에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핸들을 달았다는 점이다.

드라이스 만든 기계는 그의 이름을 따서 드라이지네(Draisine)라고 부르기도 하고 빠른 발이라는 뜻으로 벨로시 페트(Veiocipede)라고 부르기도 했다.

드라이지네는 차체가 타는 사람의 무게를 지탱해 주어서 걷는것보다 속도가 빨랐으며 게다가 핸들이 있어서 숲과 나무사이를 다니기에 좋았으며 자전거의 모양을 갖춘 효시라 할 수 있다.

이천시 자전거 연맹의 창립을 축하하며 회원간 단합과 앞으로의 활약에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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