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의 아들은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 상대방의 보험회사 직원이 찾아와 “이 교통사고는 A씨 아들의 100% 과실로 인한 사고다. 우리는 아무런 배상책임이 없으나 인도적인 차원에서 치료비 정도를 지급해 줄 테니 합의하자”고 제의하였고, 사고의 경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A씨는 교통사고가 전적으로 아들의 과실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고 일부 치료비만 지급받은 채, 더 이상 어떤 손해배상청구도 하지 않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교통사고에 상대방의 과실도 상당 부분 있는 걸로 밝혀졌다면, A씨는 이미 한 합의를 취소할 수 있을까요? 사례에서와 같은 합의, 즉 민법상 화해계약은 착오를 이유로 취소하지 못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화해당사자의 자격 또는 화해의 목적인 분쟁 이외의 사항”에 착오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취소가 가능합니다(민법 제733조). 여기서 말하는 “화해의 목적인 분쟁 이외의 사항”이란 분쟁의 대상 자체가 아니라 분쟁의 전제 또는 기초가 된 사항으로서, 쌍방 당사자가 예정한 것이어서 상호 양보의 내용으로 되지 않고 다툼이 없는 사실로 양해된 사항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착오에 의한 화해계약 취소를 제한하고 있는 것은, 당사자간 일정 부분을 양보해가면서 합의를 도출해내는 화해의 특성상, 자신이 양보한 부분이 진실과 다르더라도 더는 이를 따지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 사례의 경우 A씨는 교통사고에 상대방의 과실이 존재함에도 오로지 자신의 아들에게만 과실이 있다고 착오하여 실제 입은 손해액보다 훨씬 적은 치료비 일부만을 받으면서 일체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이후, 교통사고에 상대방의 과실도 상당히 있다는 점을 알게 된 A씨는 합의의 취소를 요구하였고, 상대방은 “화해계약은 착오를 이유로 취소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맞서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 대법원은 “교통사고가 A씨 아들의 전적인 과실로 인하여 발생하였다는 사실”은 합의의 양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어 양보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사실로서, 화해의 목적인 분쟁의 대상이 아니라 그 분쟁의 전제가 되는 사항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A씨는 착오를 이유로 위와 같은 화해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1997. 4. 11. 선고 95다48414 판결). 즉, “교통사고가 A씨 아들의 전적인 과실로 인하여 발생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A씨가 인정하면서 다투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는 “분쟁의 대상”이 아니라 “분쟁의 전제”에 불과한 것이고, 이러한 “분쟁의 전제”에 대하여 착오가 있는 경우에는 화해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취지로 의사가 환자를 진찰한 뒤 환자가 사망하였고 “환자의 사망은 의사의 의료과실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의사가 환자 유가족에게 합의을 지급하고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합의하였는데, 이후 환자의 사망이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면, 환자의 사인에 관한 착오는 분쟁의 대상에 대한 착오가 아니라 전혀 다투지 않은 분쟁의 전제 사실에 관한 착오이므로 의사는 위 화해계약을 역시 취소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 1990. 11. 9. 선고 90다카22674 판결).

따라서 어떤 사안에 대하여 상대방과 합의한 후, 그 합의가 착오로 인한 것이어서 취소하고 싶다면 그 착오가 분쟁 사실 자체에 대한 착오인지, 분쟁의 전제가 되는 사실에 대한 착오인지부터 따져봐야 하겠습니다.   법무법인(유한) 주원 02-6710-0333

법무법인(유한) 주원 김규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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