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검도관-검도 불모지에서 이룬 명문도장으로 자리매김

금년도 제 30회 사회인검도대회 노장부 우승의 쾌거를 이룬 김진구 관장(태백시 황지검도관)은 지독한 연습벌레다.

서른이 훌쩍 넘어 시작한 검도매력에 빠져 밤낮을 잊고 연습에 매진한 결과, 일찍부터 각종 검도대회에서 입상하다 이번 대회에서 그의 진면목을 발휘했다.

검도인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출전을 꿈 꿔보는 사회인검도대회는 상당한 영향력과 공신력을 가진 대회이다. 이 대회 우승자라면 명실상부 국내 최고 검객이라고 일컫는데 있어 자타가 공인하다고 할 만 하다. 더구나 김진구 관장은 2012년 제 25회 대회에서도 우승한 바 있는 실력파 검객이다.

김진구 황지검도관 관장

사회인검도대회 한 번도 어려운 우승을 2012년에 이어 올해도 우승

사회인검도대회는 전국 일반인 검도 수련자들에게 꿈의 대회로 불리는 대회이다. 2012년도 서울올림픽경기장에서 개최된 제25회 대회에서는 3000명의 인원이 참여해 우승에 대한 뜨거운 갈망으로 검을 휘둘렀다.

전국에서 출전한 검객들이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쏟아 붓는 가운데, 당당히 중년부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는 강원도 태백시의 김진구 관장(황지검도관)이다. 8강에서 지난 대회 우승자를 누르고 올라온 상대 선수를 머리치기로 제압하였고, 4강에서는 상대선수를 머리치기와 허리치기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우승을 눈앞에 둔 결승에서는 강신진 선수와 연장접전 끝에 퇴격 머리치기가 득점에 성공해 우승에 이를 수 있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의 우승에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그의 우승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훈련과 연습의 끊임없는 반복이 이뤄낸 결과였다.

그러한 김관장이 5년이 지난 올해 제 30회 대회에서도 노년부에서 우승함으로써 명실상부 국내 최고 검객임을 증명했다. 노장부는 50대 이상 연령을 대상으로 한다.

전국에서 올라온 400여명의 노장부 검객이 8개조로 나뉘어 토너먼트로 우승을 가리는 경기에서 그는 조1위로 8강에 올랐다. 이어서 고대검우회 이영우선수를 2:0으로 이기고, 준결승에서 작년 챔피언을 이기고 올라온 강력한 우승 후보 가람검도관 안현균 관장을 머리치기로 1:0으로 이겨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는 현대자동차검우회 서영모 선수를 맞아 손목치기 1점을 먼저 내주고도 침착하게 경기를 이끌며 손목치기로 동점을 만든 후, 상대방의 빈틈을 이용해 퇴격 허리치기로 1점을 더 내며 대망의 우승을 차지했다.

검도는 엄청난 집중력과 함께 찰나의 순간에 승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0.1초의 방심을 했다가는 곧 패배로 이어진다. 우승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김 관장은 “한국사회인검도대회라면 누구나 한번쯤 꼭 우승해 보고 싶은 대회인데 이렇게 두 번이나 우승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라며 아울러 “전국에서 열리는 각종 검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위한 노력과 지역사회 검도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강원도민 최초로 국내 검도 일인자가 되기까지

김진구 관장은 금년 51세다. 그의 검도 입문은 의외로 늦다. 32살에 검을 잡았다. 평소 축구, 탁구 등 구기운동은 다 좋아하는데 평생 할 만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동안 접하지 못한 수영과 검도 중에 검도를 고르면서 부터다. 김 관장과 검도의 인연은 30대 초반부터 시작됐지만, 검도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은 20대 이후 성인이 되고 난 뒤부터다. 평소 검도의 매력을 동경하면서 검도를 배우고 싶었지만, 당시 태백지역에는 검도를 배울 수 있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 그러던 1997년 당시 철암 중, 고등학교 한 교사가 시작한 검도동호회 활동에 참여한 것이 검도인의 길을 걷게 된 첫 발걸음이다. 이곳에 지금의 황지검도관의 탄생은 동아리 활동을 할 당시, 지역에 검도장이 있어야 한다는 필요에 따라 함께 운동하던 사람 중 한명이 검도장을 열면서부터 시작됐다. 얼마 후 초대 관장이 개인사정으로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고, 황지검도관의 관장을 맡을 사람이 필요해 김진구 관장이 황지검도관을 인수해 2005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관장을 할 만 한 능력이 없었다. 검도는 좋아했지만 체계적으로 남을 가르칠만한 실력까지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검도장을 맡지 않으면 없어질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선 인수를 해 놓고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초기 관원생은 전부 20명 정도였다.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검도와 관련된 서적은 물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하였다. “돌이켜보면 이 어린 학생들이 나의 스승이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끊임없는 연습과 수련에 온 정열을 불태웠다.

그의 열정은 고스란히 관원들에게 전해졌다. 주말에도 도장을 열자 부모들이 환영했다. 생업 등으로 아이들만 있는 집이 많았기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는 학부형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검도 그 자체에 빠져있었다.

황지검도관 관원들이 제3회 국무총리기 시도대항검도대회에서 강원도 대표로 출전해서 종합우승후 기념사진을 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주말과 공휴일 등의 별도 수강료를 받지 않았다. 관원들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면서 강원도대회 뿐만 아니라 전국 개인전과 단체전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입상을 시작했다. 당연히 우수지도자상을 휩쓸었다. 자신감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김 관장의 실력 또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검도 입문 5년 차인 2002년에 강원도대회에서 3등에 입상할 수 있었고, 그 후 강원도대회에서 우승하였다. 그 여세를 몰아 2005년도에는 그보다 큰 전국규모의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검도인 이라면 누구나 꿈꾼다는 대회의 2연패를 이루었다. 그런 그는 검도수련자에게 근면성실과 예절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검도는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나는 운동입니다. 단지 기술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인격수양과 상호예절을 중요시합니다.”라는 김진구 관장 검도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태백시에서 전국대회 우승 등 각종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이룬황지검도관은 김관장의 피와 땀의 결정체로서 이미 명문도장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김진구 관장은 검도지도자로서 향후 올바른 인성을 바탕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보다는 약자를 위하는 정신을 지향하여 우리 사회에 교육적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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