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채용·정규직 전환 12만 명 규모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공공기관을 비롯해 기업, 노동계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와 관련 6월 21일 열린 ‘제1차 일자리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재계·노동계의 일자리 관련 모범사례가 소개된 데 이어, 7월 6일 개최된 일자리위원회의 정책간담회에서는 6개 공공기관의 모범사례가 추가로 발표됐다. 이로 말미암아 창출되는 일자리 및 정규직 전환 규모는 12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사례는 ▲기업의 일자리 창출 ▲민간·공공 분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노동계의 양보·참여 등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21일 일자리위원회 제1차 회의를 직접 주재한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과 노동계의 양보, 연대 노력에 감사하다”면서 “국민도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적극 협조해주신 분들의 노력을 평가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제 주체별 모범사례를 살펴봤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범농협 일자리위원회, 중소기업 일자리위원회 설립

먼저 민간부문에서는 신세계그룹, 롯데그룹, 현대백화점 등이 신규 채용 규모를 대폭 늘리고, SK브로드밴드와 농협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적극 전환하기로 했다. 최근 신세계그룹은 1만 5000명, 현대백화점은 2600명, 롯데그룹은 5년간 7만 명의 신규 채용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SK브로드밴드는 5200명의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겠다고 밝혔고, 농협 역시 전체 계열사 비정규직 52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특히 농협은 ‘범농협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해 청년 채용 및 상시·지속적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한 정규직 전환을 적극 추진해나기로 했다. 범농협 일자리위원회는 농협중앙회 전무이사가 위원장을 맡고 지역별 조합운영협의회 의장과 각 계열사 대표 등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주목을 받고 있다. 중소기업단체협의회와 900여 업종별 중소기업 협동조합이 참여하는 ‘중소기업 일자리위원회(중소기업중앙회장, 여성경제인협회장, 중소기업 대표 등 35명으로 구성)’를 발족해 ▲청년 10만 명 정규직 채용 캠페인 ▲성과공유제 참여 기업 10만 개 이상 확산 운동 ▲중소기업 전 업종을 아우르는 공동채용 박람회 개최 등을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1100여 명 전 직원 100% 정규직, 바디프랜드

기업 현장에서는 일찌감치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온 기업도 적지 않다. 안마의자 판매·렌털 회사로 유명한 ‘바디프랜드’(서울 소재)는 1100여 명에 달하는 직원 전체가 정규직이다. 영업, 마케팅 같은 일반 직군뿐만 아니라 미용사, 헬스트레이너, 바리스타, 요리사, 손톱 관리 전문가 등 사원 복지를 위해 채용된 직원도 정규직이다. 전국 110개 직영 매장에 근무하는 직원과 콜센터, 청소, 경비, 배송 담당도 정규직이다.

모든 직원이 정규직이다 보니 진풍경이 벌어진다. 사내 직원들은 근무시간에 복지시설을 이용하는데, 그 시설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일반 직원과 마찬가지로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하는 정규직이기 때문이다. 물론 근무시간에 복지시설을 이용한다고 문제 삼지는 않는다.

업무에 따라 직원들 간 임금 차이는 있다. 청소·경비직의 경우 법정 최저임금보다 다소 많은 금액을, 마케팅·기획 등 일반 사무직은 대졸 초임 평균인 2500만~30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는다. 전국 직영 전시장 110곳에서 일하는 매니저 200여 명과 콜센터 직원 150여 명은 기본급에 인센티브를 더한다. 계약이 성사되면 수당을 더 받는 식으로 연봉이 1억 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대신 4대 보험 및 복지 혜택, 고용 안정성은 모두 동일하다.

경력 직원을 채용할 때는 직군을 불문하고 관련 분야에 몸담았던 기간을 그대로 인정해준다. 입사 지원에 학력·성별·나이 제한을 두지 않고 자격증과 학점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성심성의껏 작성한 자기소개서와 근무 각오를 면접 과정에서 꼼꼼히 확인한다.

2007년 직원 7명으로 출발해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은 바디프랜드는 지난해 정부가 선정한 ‘고용 창출 100대 우수기업’에 선정됐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공로로 산업포장을 받았다. 작년 매출액은 3665억 원. 박상현 대표는 “‘이 회사가 내 회사’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직원은 근무태도부터 다르다”며 “직원이 회사에 감동해야 고객도 감동을 받는다는 소신으로 100% 정규직화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 경찰, 디자이너, 광고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영입해 단기간에 기술을 축적하고 회사를 키우려면 정규직 채용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2017년 6월 23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바디프랜드 본사 사옥에서 직원들이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다. 바디프랜드는 바리스타, 요리사, 경비원, 콜센터 직원 등 모든 직종을 정규직으로 고용한다.

선창산업 일자리 십시일반으로 신규 직원 채용

목재 합판 제조회사인 ‘선창산업’(인천 소재)은 ‘일자리 십시일반’을 실천하는 기업이다. 최근 노사 합의로 기존 직원들의 근로시간과 임금을 줄이는 대신 신규 직원 80명을 더 채용해 노동 강도를 줄이고 삶의 질은 높였다. 이 회사는 작년에 ‘일자리 창출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현재 직원이 430여 명인 이 회사는 작년 2월까지만 해도 직원 수가 350여 명이었다. 직원들은 아침 7시에 출근해 저녁 7시까지 근무하는 주간조와 나머지 12시간을 일하는 야간조와 맞교대로 일했다. 하루 12시간 중노동을 하다 보니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공장을 제대로 돌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경영진은 직원을 더 뽑아 노동 강도를 줄이기로 했다. 기존 직원들은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어 여유가 생긴다는 점에서 환영했으나 월급이 깎인다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원래 받던 월급에 맞춰 가계를 꾸리던 직원 중 일부는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원은 피로가 쌓여 더는 일할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보다는 삶의 여유를 찾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노사는 수차례 협상 끝에 급여를 10% 정도 줄이는 대신 직원 80여 명을 채용하기로 합의했다.

일자리를 나눈 뒤 선창산업에 적잖은 변화가 생겼다. 근무여건이 좋아지면서 생산성이 오르고 매출이 늘어난 것. 2012년 2414억 원, 2015년 3092억 원이었던 매출액은 일자리를 나눈 다음 해인 2016년에 3113억 원으로 증가했다. 박성주 선창산업 노조위원장은 “일자리를 나누려면 노사가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자리 선순환’ 구축한 녹십자

국내 대표 제약기업인 녹십자는 ‘일자리 선순환’을 만들어낸 사례다. 녹십자는 최근 10년간 인력 채용이 제약 분야에서 가장 많이 늘어난 기업으로 꼽힌다. 백신과 혈액제제(혈액 내 단백질 성분을 분리해 만든 의약품) 수출 증가에 힘입어 매출이 2008년 5000억 원에서 2016년엔 1조 2000억 원으로 향상됐다. 직원 규모도 1287명에서 1972명으로 8년 만에 53%가량 증가했다. 전체 매출액 중 수출액은 2008년 500억 원대에서 2016년 2038억 원으로 증가했다. 동남아시아부터 유럽·중동까지 수출시장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수출물량이 늘면서 시설투자와 인력 채용이 덩달아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정규직의 비중은 거의 100%에 가깝고, 양질 일자리로 분류되는 연구개발(R&D) 직원의 비중은 16%에서 22%로 늘었다.

녹십자는 2009년 경기 신갈에 있던 생산공장을 전남 화순(백신), 충북 오창(혈액제제)으로 나눠 옮기면서 생산규모를 기존보다 3배가량 늘렸다. 2016년까지 7년간 화순·오창 공장에 들인 시설투자금은 5000억 원이 넘는다. 녹십자의 매출 규모를 감안하면 전체 매출의 10%가 넘는 금액을 시설투자에 쏟아부은 셈이다.

녹십자는 2014년부터 매년 제약업계 최고 수준인 1000억 원 이상을 신약 개발에 쏟아붓고 있다. 올해는 연구개발 투자액을 1500억 원으로 높였고 2019년부터는 2000억 원을 넘을 전망이다. 최근 국내 제약업체들이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서는 가운데 녹십자도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면서 투자와 인력 규모를 크게 확대했다. 녹십자는 내년의 북미시장 진출에 대비해 연구개발 인력 채용을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다. 올해 공채로 200명 정도를 뽑을 예정인데 품질관리와 연구개발 분야에서 40%가량 선발한다. 녹십자 관계자는 “고급 인재를 채용해 매출을 늘리고 여기서 번 돈을 다시 투자해 더 많은 양질 인력을 채용하는 선순환 구축에 힘쓰고 있다”며 “글로벌 프로젝트 확대에 맞춰 회사의 성장을 이끌어갈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일자리 가운데 공공부문은 전체의 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수치인 21.3%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대신 고용 안정성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공공부문 일자리 중 같은 근로자가 1년 이상 일한 ‘지속 일자리’는 86%를 차지한다. 또 공공부문 근로자의 23%는 20년 이상 장기 근무자이고, 정부기관 공무원의 10년 이상 근무 비중은 60%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고용 안정성이 높고 일자리 창출의 여지가 충분한 만큼 정부는 공공부문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나갈 방침이다.

6월 26일 인천시 중구 소재 선창산업 직원들이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선창산업은 기존 직원의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는 방식으로 직원 수를 80여 명 더 늘렸다.

경제·사회 시스템 일자리 중심 재설계

먼저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올해 안으로 비정규직 근로자 6800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한국공항공사도 4154명을 정규직화하기 위해 관련 태스크포스(TF)를 설치했다.

한국전력공사는 올해 국내 공공기관 중 가장 많은 수인 1200명을 신규 채용 한다. 4차 산업혁명 관련 일자리를 추가로 발굴해 가능한 한 채용 규모를 더 늘릴 계획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지역인재 채용비율을 30%까지 늘린다. 또한 한국가스공사에서 근무 중인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 고용의 질을 높이기로 했다.

이 밖에 서울대학교는 비학생조교 250여 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할 예정이며, 우정사업본부는 200여 명의 기간제 우정실무원을 무기계약직으로 돌리기로 했다. 강원랜드는 협력업체 1600여 명을 직접고용 형태로 바꾸는 것을 검토 중이다.

대구시와 경상북도 등 지방자치단체도 산하 출연기관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지역별 일자리 상황판(서울·부산·광주·대전·울산·충북·경북·경남)’을 만들고 ‘지역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해 지역 실정에 부합하는 일자리 정책을 수립하는 등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적극 뒷받침하고 있다.

한편 노동계도 정부와 기업의 일자리 정책에 적극 화답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조합들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최근에는 공공기관노조와 보건의료산업노조 등이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해나가겠다고 했다. 특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 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정부의 성과연봉제(직급이 아닌 개인별 성과에 따라 임금에 차등을 주는 제도) 폐기 수순을 환영하며, 이미 지급된 인센티브 전액(1600억 원)을 환수해 비정규직 처우 개선, 청년 고용 확대 등에 사용하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이에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사회적 대타협의 첫 출발”이라고 평가하며 인센티브 사용처 등 구체화를 위해 추후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국민카드 정규직 근로자 1500명은 임금을 동결하고 재원 25억 원을 하청업체 직원들의 처우 개선에 사용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역사에는 시대정신이 있다. 지금은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양극화를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시대정신”이라며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분들이 최고의 애국자로서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칭송받는 환경을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분들이 조세, 예산, 조달, 포상 등 각 부문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 경제·사회 시스템을 일자리 중심으로 재설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6월 26일 전남 화순의 녹십자 백신 공장에서 연구개발(R&D) 직원들이 주력 수출 상품인 독감 백신을 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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