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미국에서 사역 후 군산에서 음악으로 복음 전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1장 1~3절)

성경을 봉독하고 기도를 드리는 것, 찬양을 드리는 것 모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며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고 이웃을 사랑함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군산중앙교회는 찬양과 같은 음악을 통한 방식으로 세상과 함께한다.

제7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박정동 목사가 성악가 출신 목회자라는 점에 착안해 음악회 형식으로 여러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가곡과 찬양의 밤’ 등 기독교적이고 경건한 정취를 가득 담아 교우들과 지역주민들이 만장한 가운데 막을 열리는 음악회는 오랫동안의 혼란과 갈등을 벗어나 새롭게 출발한다는 공동체의 선언과도 같다.

미국과 독일에서 오랜 기간 목회와 선교

박정동 목사는 미국에서 15년, 독일에서 7년 간 유학과 목회를 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미국에서 1993년부터 2007년까지 신학과 목회 생활을 했고, 이후 독일로 건너가 2007년에서 2014년까지 재독광부와 간호사, 유학생 등 300여명 규모의 쾰른 한빛교회에서 사역했다.

박정희 정권 때 파견된 광부나 간호사, 그후손들과 이후에 유학한 젊은 유학생들인재독 한인들은 독일에서 우리나라 문화를 보급하고, 우리나라의 산업 발전 기초를 다지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현지에서 교회를 세우고 이민족을 선교하고 유학생들을 돕는 일에 큰 기여를 했다. 최근 터키, 중앙아시아 이민자를 비롯해, 집시와 난민들까지 대거 독일에 유입되었는데 이들을 선교하고 물질적으로 돕는 일에 한인 교회들이 적극 앞장서고 있다.

박정동 목사도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목사들과 연계해 활발한 목회활동을 펼쳤다. 그가 섬긴 한빛교회 선교관의 인터네셔날 미션에서는 매년 몇 명씩 무슬림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다. 그는 음악인이 많은 교회를 목회하는 것과 본인의 성악 전공을 활용해 살려 음악적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

군산중앙교회 박정동 목사

일 년에 4번, 매 절기마다 독일 내의 10군데 정도의 기관들를 방문해 작은 콘서트를 열어 그들과 문화를 공유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며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다.

양로원, 병원, 문화단체 등이 주된 대상이었고 교회 내에서도 일 년에 두 번은 큰 음악회를 개최했다. 박정동 목사는 음악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관심과 식견이 많은 목회자이다. 그는 한국에서 84년, 88년, 93년에 각각 대학을 졸업했고, 그 전공이 문학, 경영학, 음악이었다. 특히 그가 세 번째 대학으로 음악을 택한 것은 목회에 대한 소명을 받고 나서 그냥 설교하고 목양을 하는 목회보다 음악을 통해 목회의 일을 하고 싶다는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박정동 목사의 집안은 일제 강점기인 1928년도에 할머니가 신학교를 나와 국내 선교활동을 하면서부터 기독교인의 길을 걸어 왔다.

따라서 그도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성경이나 교회 활동에 익숙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평범한 기독교인의 삶을 살던 그가 목회에 대한 소명을 가지게 된 계기는 1988년 즈음 개인적으로 가까운 여러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서부터이다. 건강하던 부친이 갑자기 암으로 사망했고, 처형이 미국에서 의료사고로 사망했고 가까운 지인도 큰 사업 성공을 눈앞에 두고 뇌출혈로 사망하면서 인생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선친의 암 투병의 6개월 동안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고, 장기간의 특별 기도를 한 이후 목회자로서의 삶을 결정했다고 한다. 일반 직장인에서 이제 소명의 길을 가게 되면서 그의 마음속에 음악적 목회에 대한 비전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한양대학교에 89학번으로 진학하게 된다.

음악대학 재학 당시, 교회를 출석하는 많은 음악인들이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기회가 주어지면 음악인들을 진정한 찬양자, 신앙인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을 하고 싶었다. 이후 93년도에 미국으로 가 미국 싸우스웨스턴 대학원에서 음악석사와 목회학석사과정을 전공했다.

그의 여러 가지 배경과 그의 복음적 사명은 그를 음악목회에서 복음전파자와 설교자로 폭넓게 활동하게 하였고, 99년도에 대학원 졸업 후 플로리다에서 3년 간, 캘리포니아에서 5년간 담임목회활동을 했던 것이다.

이후 박목사의 자녀들이 모두 대학에 진학하는 2006년 ‘빈 둥지 증후군’을 겪는 시간에 박목사는 목회의 방향을 바꾸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과거 그가 꿈꾸었던 음악인들을 찬양자로 세우는 일에 소명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 일을 위해 뉴욕으로 향하려던 즈음, 독일의 음악인이 많은 한빛교회에서 초빙을 받게 된 것이다. 독일 목회의 특징은 많은 음악인들과 음악적인 환경 속에서 음악에 기반한 다양한 목회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음악인들과 현지 독일 이민 2세들과 함께 여러 민족을 향한 다양한 선교도 할 수 있었다. 사실 한국에서 선교사를 파견하면 적어도 2년은 문화적응과 언어공부에 소진하기 때문에 그 열매가 쉽게 맺어지지 않지만 독일에서 자란 언어에 탁월한 2세들을 동원하고 음악인들과 의료인들을 함께 연계하여 선교를 하면 매우 효과적으로 선교를 할 수 있었기에 박목사의 목회는 매우 활발한 것이었다.

그는 매년 독일에 음악 등으로 유학 오는 학생을 100명 이상 만날 수 있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참 신앙적인 음악적 리더로 세워진다면 향후 한국의 100교회에서 진정성있는 음악목회가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비전을 가지고 사역을 했다고 한다. “백 사람이면 백 교회이다.”

음악으로 웅장한 교회 채우고 사람을 불러 모으다

독일에서 7년간 사역을 마친 이후 한국교회를 섬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침 모교회인 신반포 교회에서 1년 반 동안 수석부목사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어 한국목회에 적응하는 기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동안에 장로교 총회 100회 기념 특별편목과정을 마치고 올해 본 교단 정회원 자격을 취득한 후, 지난 11월 12일 군산 중앙교회 위임 목사로 세워지게 된 것이다.

중앙교회의 건물은 웅장한 유럽식이다.

박목사에게 이 크고 웅장한 예배당을 말씀으로 가득 채우고 아름다운 찬양과 기도로 채우며, 나아가 지역사회와도 함께 공유하는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포부가 생겼다. 특히 음악으로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음악은 그의 전공과 외국 목회생활에서 이미 익숙했던 부분이었고 또한 많은 인맥들이 있어, 매월 음악회를 열더라도 큰 비용 들지 않을 것이라고 당회를 설득하여, 작년 10월부터 오늘까지 매월 시민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월 한다고 해서 아무나 부르는 것이 아니다. 실력자이면서도 지명도가 있는 음악인들을 세우기 때문에 음악 애호가들은 본교회의 음악회를 높이 평가하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주로 세 번째 주나 네 번째 주에 하는데 앞으로 보다 많은 홍보와 다양한 레파토리로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할 생각이다.

일반인들을 위해 종교적인 곡 일색보다는 정서적인 가곡이나 오페라 곡 등 일반 곡을 1:1 정도로 배합하여 비신자들도 음악회에 부담없이 올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음악회가 ‘브릿지 이벤트’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교회 문턱을 높게 생각하고 기독교를 배타적으로 생각하는데 음악회가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다리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서울에서는 수준 높은 문화행사를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지방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도 중앙교회의 음악회가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요인이다. 박정동 목사는 이를 통해 교회가 더 외형적이나 재정적이나 성장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향후 교육재단이나 문화재단도 만들어 음악학교도 건설하고 음악 콩쿨도 개최하여 지역의 음악학도들을 육성하고 기독교 문화 발전에 더 기여하기를 원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가 짧지만 이렇게 융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등 사회봉사 활동을 많이 해 일반시민 사이에 호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외면당하는 큰 이유는 교회가 너무 자기 안의 일만 치중하고 외적 성장에만 힘을 기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박정동 목사의 진단이다.

교회가 건전한 문화 창출에 신경 쓰고 세상을 돕고 함께 간다면 자연히 좋은 인식을 얻을 수 있고 선교도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요즘 무조건 믿으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비록 현재 기독교 선교가 침체기를 맞았지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교회와 사회가 같이 걸어 간다면 한국교회의 부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독일의 경우 교인들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지는 않는다. 등록교인이 3천명이어도 불과 몇 십 명이 매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그런데 절기가 되면 대부분 교인이 예배를 참석하고 자신들이 교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그들의 문화가 매우 기독교 적이다. 삶속에 기독교 문화와 기독교 정신이 가득 차있다. 이웃을 많이 구제하고 세계 곳곳에 까지 넓게 도움을 준다.

현재 인구 비율 당 구제의 액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독일이다. 이렇게 해야 진정한 ‘축복의 통로’로 교회가 인식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런 면에서 박정동 목사는 “한국 교회도 교회의 내적 성장에만 힘쓰지 말고, 사회봉사나 기독교문화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좀 더 신경 쓰기를 바란다. 우리 중앙교회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교회, 우리식구, 우리성도만 챙기지 않고, 지역을 넓게 섬겨 이질감을 없애고, 거리감을 좁혀 세상속에 교회가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서양음악사와 교회사는 같은 맥락이다. 음악인을 키운 것은 교회였다. 간혹 왜 음악인이 교회에서 예우를 받고 교회에서 지원을 받아야 하는 가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도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찬양을 가장 좋아하시며 교회가 좋은 찬양자를 육성하는 일은 교회 발전에 필수 불가결한 일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 외부 음악인들이 중심이 아니라 교회내의 신실한 전문가 찬양대를 조직하고 그들을 통해 좋은 크리스천 음악을 보급하고, 또 재능 있는 재원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일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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