言路卽心路也(언로즉심로야) 말이 통하는 길이란 곧 마음이 가는 길이요

 心路傳心之路(심로전심지로) 마음의 길이란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다.

옛글에 이르기를, 언어라는 것은 마음의 소리요(心之聲曰言), 글(書)이라는 것은 마음의 그림이라(心之畵曰書)고 하였다. 특히 실학자의 한 분인 이수광(李晬光)선생께서는 언로(言路)는 곧 심로(心路)라고 하였다. 어느 시대에 있어서나 많은 이들에 의하여 언로가 열려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바꾸어서 말하면 백성들의 말(의견)이 나라님의 귀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에 있어서는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뜻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

때의 고금을 막론하고 말길(言路)이 막히면 상의하달(上意下達)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하의상통(下意上通)도 되지 않는다. 나라님이 의사가 백성에게 통달되지 않으면 백성들은 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짐작하기 어렵게 되고. 백성들의 뜻이 나라님에게 상달되지 않으면 백성들의 생활고를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백성을 위한 올바른 정치를 펴나갈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첫째, 치세(治世)의 길을 열어가기 어렵고,

둘째, 이민위천(以民爲天)이라는, 말은 구두선에 지나지 않으며,

셋째, 백성들로 하여금 나라를 믿게 하기 위한 신뢰정부(信賴政府)라는 위상은 살아지게 되기 쉽다.

넷째, 더욱 두려운 것은 백성들이 믿을 데가 없으면 스스로 살아가기 어렵고 정부로서 백성들을 믿을 수 없게 되면 정부 자체의 존립기반(存立基盤)을 유지해 갈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정자정 민자민(政自政 民自民)이라고 한다. 정부는 정부이고 백성은 백성이라는 뜻이다.

백성을 위한 정부가 아니고 정부를 믿을 수 없는 백성이라면 그것은 솔직히 말해서 나라가 아니다. 물결에 쓸려가고 바람결에 날려가는 모래알도 시멘트와 만나면 하나의 굳은 고체가 되어 어떠한 물결에도 떠내려가지 아니하고 어떠한 바람결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체 위상을 지탱해갈 수 있다.

국민이 정부를 중심으로 하여 하나의 생존공동체가 되고 미래를 향해서 끊임없이 전진할 수 있는 내공력(內功力)을 굳건히 하기 위한 것이 다름 아닌 국론(國論)의 통일이다. 국론의 주원(主源)은 언제나 정부에 있으면서 그것이 외연기능(外延機能)을 통하여 온 백성들을 내화(內化)하는 철학적인 설득력과 공감하는 실천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것이 살아있는 국론(國論)이요, 민심통합의 자력(資力)인 것이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이수광선생께서는 언로(言路)는 곧 심로(心路)라고 했던 것이다. 많은 이들은 말하기를 서로 마음이 통할 때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한다. 말을 서로 나누기 이전에 이미 마음이 서로 통한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서 중용(中庸)에서는 신재언전(信在言前)이라고 했다. 즉 서로 믿는 마음은 말하기 전에 이미 통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일각에서는 소통이 잘 안 되고 있다한다. 필자로서는 가끔 혼자서 생각해보았다. 소통이라는 것은 상대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아울러 양방 중 어느 일방이라도 청문의사(聽聞意思)를 소홀히 하면 소통은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 일례를 든다면 내 집으로 통하는 골목길에 자천거도 세워놓고, 자가용도 주차시켜놓고, 거기에 또 쓰레기통도 늘어놓았다면 그 골목길에 소방차(消防車)가 들어갈 수 있을까? 그리고 119구급차(救急車)가 들어갈 수 있을까? 소통장애요인을 스스로 범하고 있으면서 소방차나 구급차가 늦게 왔다고 다른 이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근간 정가일우(政街一隅)에서는 고위직 치자군(治者群)의 일원이면서 “사드”반대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고, 시장바닥에서도 상도의상 잘 하지 않는 “맨입”운운하면서 정치적 흥정을 벌린 사안에 대하여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국론통일을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할 위치에 있는 이가 그와 같은 망언을 거듭하여 국론분열을 획책하고 있으니 항간에는 유언비어가 난무할 수밖에 없다. 많은 선현(先賢)들께서는 말하였다. 국론이 조정에 있지 않으면(國論不在於朝廷) 항간에는 사의(邪議)가 떠돌게 된다고 말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언로(言路)는 심로(心路)라는 그 구절의 의미를 마음 깊이 되 뇌어보면서 이른바 언론의 자유개념 속에는 방종(放縱)의 무책임성까지 포함되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깨우쳐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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